고전콘텐츠뿌시기
오랜만에 찾아온 고콘뿌! 요즘 회사에서 지역 전설을 활용한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장르로 따지면 비주얼 노벨, 특징은 사용자가 이야기 흐름을 선택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게임. 지금 한창 작업중인데 게임을 모르다 보니 작업하다 막힐 때면 비주얼 노벨-인터렉티브 게임을 하나씩 플레이해보곤 한다. 그러던 중에 엄청나게 기대되는 게임을 찾아서 바로 구매하고 고콘뿌 후기를 남기겠다 결심했다. 무려 동양풍, 조선시대 배경, 비주얼 노벨, 인터렉티브의 삼박자 조화! 고전을 활용한 콘텐츠에 목말랐던 나에게는 단비 같은 게임bb
나의 소듕한 주말을 투자했던 게임 리뷰를 적어볼까 한다.
게임 플레이 날짜 : 2023년 1월 13일(금)~14일(토)
실제 플레이 시간 : 3시간 30분
달성 과제 상황 : 10개 중 9개 과제 달성, 진엔딩 확인 완료
별점 : ★★★
<수호신>은 2022년 4월 14일 발매한 (살짝 식긴 했지만) 따끈한 신작이다. 최근에는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에도 출시되어서 다양한 매체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스팀에서 샀고, 마침 50% 세일 중이라 9500원 정도에 구입했다. 스팀 정가는 19,500원이다. 특이한 게 게임 개발사가 프랑스에 있고, 핵심 기획자 또한 프랑스인이다. 처음 1인 개발로 시작해서 다른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든 이유는 하나. 개발자가 한복을 좋아해서란다. 한복이 예뻐서 게임에 많이 나오면 좋다고 생각했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한복을 여러 게이머에게 소개하고 싶었단다. 개발자의 의도는 게임 전체에 아주 진득하게 녹아있는데, 한복 재질 표현이 아주 예술이다. 차르르 흐르는 비단의 재질이랄까, 반딱거리는 비단의 광택이랄까. 그런 것들이 아주 잘 담겨있다.
스팀에서 전체 평가 89개 중 91%가 매우 긍적적이라는 리뷰를 남겼다.
<수호신>은 주인공 유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리는 어릴 적부터 양동 지역에 살았는데, 양동 유지인 김대감의 도움으로 한양에서 무술 공부를 하고 무과시험에 합격한다. 합격 후 양동으로 발령받아 3년 만에 고향 양동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날, 유리는 양동 주변에서 묘령의 여인을 만난다. 여인은 얼마 전 양동에 이사 온 사람이라며 김대감과 양동 사또 등의 이름을 줄줄 읊는다. 그리고는 선물이라며 녹색 노리개를 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 여인은 계속 등장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티를 처음부터 팍팍 낸다. 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다거나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양동에 돌아와 소꿉친구 수아와 윤복과 만나 회포를 풀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윤복이 사라진다. 윤복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양동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라진 윤복이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유리는 친구 윤복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양동에 평화를 되찾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박수 무당을 찾아가고, 승려를 찾아가고, 여기저기 수사를 다니며 여러 죽을 고비 끝에(죽는 엔딩을 몇 번이나 봤는지,,) 유리는 양동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이 구미호의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유리는 타임루프로 양동으로 오던 첫날로 되돌아가고, 구미호를 죽여 이후 벌어질 살인을 막는다. 그리고는 소꿉친구 수아와 행복한 결혼 엔딩. 아, 여기에 출생의 비밀이 한 스푼 들어간다. 유리를 아껴주고 응원하던 김대감이 알고 보니 유리의 숨겨진 아버지였다는 사실까지. 전체 스토리라인은 이렇다.
스팀 후기 중에 가장 공감 갔던 것은 “주인공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극도로 무능했다. 그의 수사 방법은 형편없었다.”라는 말이었다. 확실히 주인공은 무능력하다. 유리는 게임 속 모든 영적인 존재(무당, 승려, 수호신)의 도움을 받지만 구미호를 이기지 못한다. 오히려 급습을 받아 죽고, 방심하는 사이에 소꿉친구 수아와 윤복도 죽고, 김대감집 딸도 죽고, 사또도 죽는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타임루프로 모두를 살리긴 하지만 그 전까지 주인공의 무능력에 속이 답답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무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우선 제한적인 플레이 탓이 크다. <수호신>은 인터렉티브 게임, 즉 선택형 게임의 요소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어어엄청 적다. 이쯤이면 한 번 선택할 법 한데.. 하는 순간에도 선택지 없이 정해진 스토리를 따른다. 물론 대부분의 선택형 게임이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 정해진 스토리를 따르는 답정너이긴 하지만 <수호신>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그러다보니 게임을 하는 건지 소설을 읽는 건지 모르겠는 수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서 표정이 일그러졌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게임하는데 표정이 왜 그러냐고 물었을 정도이다..ㅋㅋ
서사적 요소에서도 주인공의 무능력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수호신>의 중심 갈등은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구미호와 그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수호신의 대립이다. 게임 제목이 수호신이기도 하고, 수호신과의 만남으로 주인공 유리가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에서 수호신이 이야기 구조의 큰 축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구미호와의 대립에서 수호신은 직접 구미호와 맞서지 않고 유리를 내세운다. 흔히 생각하기에 수호신이라면 엄청난 능력자일 것 같지만 (실제 능력자 수호신도 아주 많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최근 나온 영화나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영화 <곡성>에 나오는 무명(천우희역)을 떠오르게 한다. 수호신이나 능력이 제한적이고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정보도 매우 제한적인, 그야말로 소극적인 신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 실질적인 대립은 구미호와 유리의 대립이 된다. 그런데 구미호에 맞서 싸우기에 유리의 특성이 부족하다. 한양에서 갈고 닦은 수사 능력과 무예 실력이 있다고 하지만 이야기에서 쓰지 않으니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리의 주변 인물 중에서 실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리는 무술과 수사 능력으로 대표되는, 그간 갈고 닦은 자신의 긍정적 자질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갈등은 팽팽하지 않고 느슨해진다.
결국 유리는 자신도 죽고 친구들도 죽어본 후에야, 시간을 뛰어 넘어 과거로 돌아가 구미호를 막게 된다. 마지막에야 유리의 무술씬이 등장한다. 유리는 활로 구미호를 쏘고, 결국 구미호를 잡는다. (이렇게 무술을 잘 쓰면서 왜 그동안 숨겼던 거니 유리야,,) 이후로는 앞서 소개했듯이 해피엔딩.
유리의 화려한 활솜씨를 보니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구미호 퇴치법이 떠오른다. 옛이야기 속에서 구미호나 여우를 무찌르는 방법은 여럿 있는데, 그중 재밌는 건 호리병 세 개(엄밀히 말하면 호리병에 걸려 있는 도술)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옛이야기 <여우누이> 속에 호리병 세 개의 위력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파란색 병, 빨간색 병, 검은색 병이 등장한다. 여우가 주인공을 죽이려 달려들 때 호리병 세 개를 사용하는데, 파란 병을 던지면 큰 강이 나오고, 검은색 병을 던지면 가시덤불이 나오고, 빨간색 병을 던지면 큰 불이 나서 구미호를 무찌른다. 게임 속 수호신이 유리에게 호리병 세 개를 줬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병이나 구슬을 던져서 괴물을 퇴치하는 건 옛이야기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이니 게임에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