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야마구치 슈의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를 읽고 있습니다.
마케터로 시작해 컨설팅 펌을 거치며 경영 컨설턴트가 된 그가 정의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프레임 워크에 대한 책입니다.
마케터, 컨설턴트 쪽에 근무를 하다보면 수 많은 프레임워크를 체득하게 됩니다.
프레임워크란 어떠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최적의 방법을 효율적으로 정리한 공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보통은 스타트업 기업이 고객을 모객하는 방법, 신규 서비스를 런칭할 때 또는 리텐션 고객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런 방법이 사용되지만,
책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기업활동을 넘어 ‘인생’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책으로 발간한 것이지요.
책의 내용이 평소에 하던 생각과 아주 같은 결을 지니고 있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는데요.
일본의 경제 상황, 사회적인 문제가 한국이 거쳐야하는 궤를 1보 먼저 밟고 있는 상황이라 꼭 한번은 블로그에 쓰고 싶은 내용이 많더군요.
대한민국 사회는 현재 저성장 궤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성장 시대라는 상태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저성장 시대라 함은 사회 다수의 산업군이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죠.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산업군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기술들이 추구할 수 있는 성장의 끝점에 도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저성장 시대란 개발도상국의 시기를 지나 경제 성장률이 완만한 플랫토우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소비자용 그래픽 카드는 더 이상 고도화를 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차별화 경쟁에서 추구하는 ‘고품질 = 고가’라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효율의 경쟁으로 바뀌게 되죠.
이 시점에서 그래픽 카드의 다음 행선지는, AI 개발을 위한 고가의 GPU를 개인에게 할당하는 임대형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저성장 시대란 결국 모두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고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대로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품이 아닌 국가 체제 측면에서도 생각을 해볼까요?
GPU처럼 거대한 기관이 소유하고 개인은 기관에게서 서비스를 할당 받는다.
어떤 사회체제가 생각 나나요?
공산당이죠.
몇 번 이야기 했지만 공산당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경쟁을 통한 기술 발전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적당히 주어진 일만 하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음식도 준다는데, 뭣하러 노력을 합니까. 내 밥벌이가 정해져있는데…
하지만 이도 한번 꼬아서 생각한다면 경쟁을 통해 고도의 기술 발전을 이룬 사회가 공산화로 사회체제를 전환 시킨다면 가능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최근 AI 개발 업무를 맡게 되면서 AI의 발전 속도가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생산의 가속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 노동을 대체할 날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론머스크의 최근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보편적 고소득과 사회적 불안, 둘다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실제로 얻게 될 것이다. 즉, 당신의 직업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보편적 고소득을 말할 때, 마치 세금을 걷어서 재분배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다. 내 최선의 추측은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달러 기준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의 산출량과 통화량 사이의 비율인데, 그래서 나는 통화량 늘리는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재화와 서비스의 산출량이 실제 통화량보다 더 빨리 증가할 테니까”
보편적 고소득과 서비스와 제품의 가격하락
완전한 공산당이 아닌, 정부에서 의료 및 대부분의 제품 서비스를 소유하게 될 것이고, 국민들은 정부의 인프라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 공산당 두 사회체제가 아닌 전혀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전환점에 국면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준비할 때가 된 것이죠.
개소리라고 부정하는 것도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매도 알고 쳐맞으면 덜 아프잖아요.
일론머스크(재계1위 부자), 야마구치 슈(일본 최고의 마케터), 그리고 최성윤(32세. 현재 복싱에 인생을 몰빵하는 중)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귀 열고 들으세요.
저성장 시대가 조명하는 것은 보편적 고소득과 새로운 사회체제 따위의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불안.
앞으로의 인류는 역사상 볼 수 없었던 가장 불안하고 가장 불행한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야마구치 슈 또한 책에서 말하기를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사회가 겪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으로 ‘자기결정 능력의 상실’을 꼽았습니다.
고성장 시대에는 시스템이 던져주는 정답이 존재 했습니다.(고학력, 대기업, 아파트)
이 정답만 추종하면 보상이 주어지던 고성장기 연극이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자기가 읽어야하는 대본을 기다리는 배우들의 공항 상태를 의미하는것이죠.
기존에 쫒던 가치가 허무해졌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더이상 고학력과 대기업 좋은 직장이 당신의 삶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맘 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지 않나요?
돈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치열하게 돈을 좇고 있죠.
왜 그럴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우린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쫒아야하는 소실점을 던져주지 않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국가가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즉 대부분의 국민이 어떻게 인생을 사는것이 정답인지 모르는 상태에 던져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목표가 있고 쫒아야하는 정답이 있다면 사람은 적당한 불안과 초조함을 가지며 현재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주어진 문제가 없다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삶을 구렁텅이 속에 밀어넣는 존재입니다.
항상 목표와 적당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스스로의 허무함에 빠져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국가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소실점을 던져주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전례없는 불안과 허무주의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소실점을 던져주지 못하는 이유 또한 단순합니다.
국민이 더 이상 국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몰락하고, 유튜브가 주요 미디어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린 더 이상 뉴스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불신이 불안을 만들고 공허함과 허무함에 빠져 인생의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이 겪었던 그 허무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스스로 소실점을 던지지 못하는 개인들은 타인이 설계한 도파민의 굴레에 휘말려 자아를 증발시키고 있어요.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 즉 ‘자기결정의 마비’는 결국 스스로를 허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몰락하게 만들게 됩니다.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본인이라면 응당 다음 시대에 팔것을 예측하고 팔 준비를 해야겠지요.
고소득과 불안의 시대에서 가장 주목 받게 되는 것은 고전 철학과 종교일 것입니다.
이유는 말안해도 알거라 생각합니다.
이정도도 못 알아들으면 그냥 창문 열고 뜀박질 하
매슬로우의 욕구 사다리를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향하기 위해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찾아야하죠.
본래는 국가에서 자아실현의 종착점을 말해주었습니다.
현재 기능이 상실된 국가의 역할의 대체제는 단순합니다.
철학과 종교가 전부가 되겠죠.
그런데 이 답답한 시대적 난기류 속에서 흔히 제시되는 철학적 도구들은 대개 두 가지 양극단에 치우쳐 있습니다.
전 이 두가지 철학이 이제 케케묵은 쉰내 나는 구시대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인간을 숫자의 노예로 만듭니다.
목표가 오직 '물질적 퀀텀 점프'에만 매몰될 때, 인간은 영적 충만함을 잃고 거대한 자본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비르투(Virtù)를 잃은 채 승리만을 쫓는 삶은 결국 성취 후의 더 큰 허무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전부다라는 사상이 얼마나 토악질 나오는 소리냐면요.
최근에 책을 끄적이면서 출판업 쪽의 동향도 알게되었는데요.
책을 출판하면 각 지역 국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일정량 사들이는 행위 자체를 '수서'라고 합니다. 수서역 말고요.
그런데 이 수서라는 시스템을 악용하여, AI로 책을 찍어내고 수서를 통해서 돈을 버는 미친 행위가 판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심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행동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본인의 물질적 퀀텀 점프를 위해 하는 행위가 국가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훗날 대한민국을 이끌어야하는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제 꿈이 삼청교육대인 이유가 다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다보면 교화는 진짜 필요하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합니다.
"나다움을 찾아 개인의 행복을 정의하라"는 식의 낭만주의적 조언이죠.
이는 제가 옛날에 언급한 “가슴 뛰는 일을 해라”는 무책임한 조언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당장 오늘 저녁 메뉴도 결정하지 못하는 자기결정 마비 인간에게 "니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고 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고문인것이고요.
나다움이라는 모호한 개념 뒤에 숨어 현실의 치열함을 회피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로부터의 고립(히키코모리)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다움이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이야기하는 나다움이란 얼마나 비겁한 말인지 이제는 새로운 철학의 빠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친 대한민국은 수능이라는 교육 체계를 통해 모든 인간을 ‘평균적인 생산력’으로 규정했죠.
수학을 잘하는 아이에게 국어 성적을 올리라고 강요하며 장점을 깎아내린 결과, 우리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탐색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평균의 함정에 빠진 개인은 스스로 결정할 근육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정답을 만드는 훈련이 아닌 정답을 쫓아가도록 교육받은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있겠습니까.
제가 요즘 가장 고평가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앞뒤 안재고 대가리부터 꼬라박는 실행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 능력을 갖추고 있거든요. 정답을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 오히려 압박을 느끼고 스스로 자유를 차단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선택의 역설’이며, 저성장 시대의 허무함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몰락의 전초전이란 것입니다.
야마구치 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Mesotēs)'이야말로 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료한 도구라고 확신합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이고요.
중용은 단순히 산술적인 중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중용이란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용기'를 찾아내고, 방탕과 인색 사이에서 '절제'를 찾아내는 최적의 지점을 포착하는 고도의 지적 능력입니다.
극단적 치우침을 멀리하라는 이야기죠.
제가 앞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철학 또한 극단적인 치우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침(마키아벨리즘)의 경계: 성공에 미쳐 영혼을 팔지 마라. 물질적 부유함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목격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독이다.
모자람(루소주의)의 경계: 나다움이라는 핑계로 나태함에 빠지지 마라. 현실의 치열한 투쟁 없는 행복은 가짜다.
그래서 중용을 어떻게 하냐고요?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각자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의하였고, 그 가치의 양극단은 당신만이 알고 있을텐데요.
저성장 시대의 허무는 소름이 끼칠정도로 거대합니다.
하지만 국가와 시스템이 소실점을 던져주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가 직접 던져야겠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우리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목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거절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거절
시스템의 요구에 대한 거절
내가 세운 나만의 질서 속에서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것.
끝으로
우리는 사회 부품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라는 인간으로서 행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무책임한 방종도, 비정한 탐욕도 아닌 그 사이의 정교한 길, 중용을 걷는 자만이 저성장이라는 거대한 난기류 속에서 침몰하지 않고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손에 망치를 드세요. 그리고 당신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세요. 그 끝에 남는 것이 바로 당신이 그토록 찾던 진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