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고요

7월의 기록들

by 미하일

* 아래의 글들은 7월에 썼던 일기 중 발췌한 글이다. 요즘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기존 계획대로 글 업로드를 못하고 있다. 조현병 인터뷰 글 역시 윤태와 못 만나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어 조만간 다시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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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인생에는, 고요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는 평화로운 시기임에도, 내 몸은, 내 주변을 지나는 폭풍의 기류를 몸소 실감하고 있으니까. 이 폭풍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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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취업 준비를 하며 바텐더를 하고 있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바텐더 관련 업력을 쌓는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생각만큼 스캐줄 조절이 안된다. 낮밤이 바뀐 생활은 내 생각보다 훨씬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지금 하는 모든걸 가지고 나아가고 싶다. 내가 굳이 바텐더라는 일에 도전한 이유는 몇 년 후 관련 일을 부업으로 하겠다는 내 꿈을 위해서니까. 사실 지금이 아니면 이쪽 업력 쌓을 기회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내가 원하는 본업은 글과 관려된 분야다. 최근에는 바텐더 일에 적응하느라 일기 이외에는 쓰지를 못하고 있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더욱 분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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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이 노트를 피는 것은. 그 동안은 아이패드에 일기를 썼지만, 결국 종이와 팬의 감촉이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확실한 것은, 그 동안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려 했던 내 노력들은 별 의미 없다는 것. 하지만 무의미와 의미는 종이 한장의 차이이다. 너무 슬퍼하지 말도록 하자. 결국 내가 규정하려 했던 ‘나’는 나를 파도 속으로 이끄는 세이렌에 불과했다. 거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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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서 근무한지도 어느덧 3달이 되었다. 이제 잠은 어느정도 잘 자는 것 같다. 요 근래 보낸 일상 중 최고의 날들을 보내는 것 같다. 비가 오고 있다. 바람도 불고, 지금의 내가 건너는 이 폭풍 속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취미는 취미일 뿐 언제까지 재밌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흠, 재미라?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유희일까. 확실히 유희는 아니지만 언제나 밝고 명량하게 살고 싶다. 설령 지옥 같은 고통이라도 그 순간 밖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 세상의 진리가 존재한다면, 이 ‘유한성’이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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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미래에 닥칠 폭풍을 알고 있는 예언자이며, 과거의 과오를 짊어지고 수갑을 차고 있는 죄수이다. 또한, 내 새로운 정신과 행동을 실험하고 있는 학자이며, 기존의 천박함을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성과 교활함을 갈구하는 학도이자, 오롯히 자신의 힘으로 상승의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는 기만자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 내면의 지배의지를 뒤엎는 혁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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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예측과 상상은 다른거라고. 이 두가지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1년 뒤 내 모습을 예측할 수 있나? 적어도 나는 거시적으로 나의 삶을 보지 못해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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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종말. 멀리서 보는 가로등의 섬광은. 자연의 종말을 지연시켜보려는 인공의 의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하지만 그 불빛이 오늘의 영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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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과 데카당스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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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유를 알겠다. 왜 그녀가 내 머리속에 잔류해 있는지. 내 영토의 너무 깊은 곳까지 침범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줬으니까. 하다 못해 이 노트까지 처음으로 봤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나에게 무가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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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지각하고 있다. 내가 통상적인 일반인들처럼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사회’라는 하나의 생태계에서, 또 목동이라는 서식지에서 자고 나란 생물들 중 나는 분명 돌연변이다. 이것은 내 과거의 불행들과 크게 연관이 없다. 그저 내 특성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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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임과 동시에, 하나의 정신적 교란이다. 인간은 이 세계 속에서 사유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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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옆 자리에서 MBTI에 대해 한참 떠들고 있다. 무언가를 유형화하고 그룹화하는 인간의 본성은 학구열 혹은 나태함에서 비롯된다. MBTI의 경우는 남을 진지하게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유형화 놀이에 불과하다. 때문에 유희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개인을 파악하는데 있어 눈 앞을 가리는 안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MBTI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이제 진지함과 유희의 경계과 허물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사실, 사람들은 유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일 뿐, 대상에 대한 인식에의 의지는 이미 덧없는 먼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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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는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때문에 자신과 같은 이형적 존재를 갈구한다. 때로는 돌연변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는 상대방 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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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나와 비슷한 인간을 찾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허상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거기에 비춘 내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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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자들은 나르시스트이다. 자신이 사랑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자체가, 오만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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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탄생은 어떠한 방식으로 찾아올까? 그것은 일상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 아무런 인기척 없이 올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격정적인 모습으로 올 것인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 일 없이 인생의 정오는 오지 않는다. 내 일상의 노력들, 말하자면 산 제물들을 바친 피의 희생 끝에 제 2의 탄생은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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