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이(가명)는 6살 중증 장애아였다.
소아뇌전증을 동반한 뇌병변(뇌성마비) 장애, 전반적 발달장애를 모두 갖고 있었기에 걸음걸이도 넘어질 듯 말 듯, 언어표현도 거의 알아듣기 힘든 옹알이 수준, 또래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살이 없어 더 작고 어려 보였던 아이.
우리 기관의 특수교육 유아프로그램인 새순교실뿐만 아니라 언어, 물리치료를 거쳐왔기에 모르는 선생님이 거의 없었던 아이. 그래서 만나기 전 이미 아이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쳤다.
미연이와의 첫 만남. 그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아슬아슬 넘어질 듯 다행히 안 넘어지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걸어온 아이. 놀이치료실 앞에서 자신과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 작은 얼굴. 눈코입은 다소 균형이 무너져있었지만, 다양한 표정과 맑은 눈을 가진 아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그 뒤편엔 큰 키에 단아한 얼굴의 미모가 돋보이는 아이의 엄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표정엔 세상에 이미 너무 지치고 한없이 바닥으로 푹 가라앉아 더 이상 올라올 힘이 하나도 없는듯한 체념과 슬픔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5평도 안 되는 놀이치료실은 또래보다 작은 미연이에겐 상대적으로 너무나 커 보였다.
그렇게 나에게 온 미연이와의 놀이치료에서는 그 많은 놀잇감과 미술도구와 재료가 있었음에도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치않았다. 손에 힘이 없어 연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항상 해보자는 나와 싫어서 손을 빼려는 아이와의 씨름이 잦았다. 매시간마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과 몸짓에도 난 큰 박수와 격한 호응을 해주었고 하이파이브를 힘차게 외쳐댔었다.
아이와의 시간뒤에 오는 10분의 부모상담시간.
외제차를 몰고 명품백을 손에 들고 있던 미연이의 엄마는 차림새만 보아도 경제적인 부족함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원한적 없는 장애 아이. 그런 아이의 양육에 어려움과 장애아이기에 주변에 내놓고 데려 다닐 수 없다는 이야기. 자신에게 준 이 시련에 대한 원망을 세상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괴롭고 힘든 심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집에 손님이 오는 날엔 미연이를 어떤 방에 가두어 둔적도 있다며 어미로서 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다고.
미연이 엄마의 마음을 그 누가 감히 뭐라 말하고 또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와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1시간도 안 되는 50분을 만나지만, 엄마에겐 매일매일 24시간이 현실이니까.
16년 전 그때 그런 미연이 엄마의 행동과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당시 난 기관 내 장애아동 부모교육과 형제자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1프로도 공감하지 못했다. 아니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미연이가 너무 불쌍하고 엄마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였다.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선명하게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나는 아이 미연이. 항상 나와 특수교사들이 이 아이가 대체 어디를 가서 이렇게 열렬히 환영받을 수 있겠냐며 한마음으로 만나면 반가움을 담아 뛰어가 손잡아주고 큰소리로 떠들썩하게 인사를 건넸던 아이.
그렇게 주 1회 여섯 달 정도를 같은 요일과 시간에 미연이를 만났다. 너무나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아이 앞에서 반응과 응답이 없지만,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이의 마르고 작은 손을 붙잡고 여러 가지 장난감과 다른 놀이들을 보여주고 침을 닦아주며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미연이가 어느 순간 제법 손에 힘도 생겨 안전가위를 잡고 내가 잡아주는 색종이를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성공한 기쁨에 미연이와 난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연이는 내가 자신에게 해냈구나를 외치며 손뼉 치고 안아주고 대견해하는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지만 같이 그냥 즐거워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는 갑자기 잘 놀던 미연이가 쓰러졌다.
강직성 전신발작이었다.
놀이치료실 매트바닥에 누워 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눈이 돌아갔고 입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난 재빨리 아이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혀주고 침을 닦아줬고 옷이 조이지 않게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몇 분 후 아이는 차츰 몸을 떠는 증상이 사라지며 한참 그렇게 내 곁에서 잠이 들었고 그 사이 연락해 달려온 미연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특수교사 선생님을 통해 전해온 소식은
미연이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팠다.
하루 전까지 내 눈앞에 있던 아이.
너무 많은 복합적인 장애를 갖고 있으면 수명이 길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중증장애아이들을 많이 경험한 선생님의 말.
그 이후 참 많이도 울었고 미연이는 오랫동안 그렇게 나에게 잊히지 않았다.
지난 6년간의 공부와 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졌다.
난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무슨 도움이 되었나.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과연 있긴 한가.
난 그저 부끄럽고 너무나 미약한 존재일 뿐이구나.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문득문득 떠오른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된 미연이. 그곳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길.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그리고 미연이 엄마는 이제.. 그녀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을까.
(그림출처:pixb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