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아 대략 5분간 인사하고 지난 일주일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그동안 아이의 두 눈과손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주변 물건들 중 젤 가까이있는 연필꽂이와 핸드폰에 손을 뻗는다.
"오늘 아침엔 무얼 먹고 왔어? 선생님은 미역국에 밥! 지우는?"
"몰라요. 전 납작한 연필을 좋아해요. 뭐라고요?(벌써 손으로 만지작) 이거 만지고 싶어요." 다리도 물론 가만있지 못하고 일어나길 여러 번째.
대답은 동문서답.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두 손이 너무 움직이지 못하게 서로를 꼭 잡아주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지우가 좋아하는 '배터져 주방장 보드게임'을 할 때였다. 분명 순서를 가위바위보로 정했지만, 자기 차례를 한 후 다음 자기 순서를 기다리기 힘들어 자신이 바로 또 하고 싶다며 손을 뻗는다. 선생님 차례엔 네가 기다려주기야.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
초반엔 한 가지 놀이를 고르곤 다른 것을 벌써 하고 싶어져 놀이 중 다른 놀잇감에 눈과 손이 이미 돌아가 있는 경우도 잦았다.그래서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끝난 경우도 많았다.
우린 매시간마다 한 가지 놀이를 충분히 한 후 그다음으로 넘어가기로 약속한다. 기다림의 의미와 순서를 지켜야 함에 대한 규칙을 이해시키고 연습해 본다. 머리론 이해가 빠르지만 몸이 먼저 움직여지는 건 어떤 아이들이나 마찬가지. 몸도 아이의 실생활 속에서 기다리게 만들기 위해선 그보다 더 많은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길에도 끝은 있단 것.
지우와는 7세부터 보았으니 곧 초등2학년이 되고 학교에선 도움반을 경유지로 다닌다.
우린 오늘도 2년째 힘찬 파이팅을 외쳐본다.
아이를 양육할 때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기다려야지"가 아닐까? 놀이치료실 상황은 그 기다림을 못해 생활 속 심각한 문제로 나타날 경우 반드시 훈련이 필요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인지가 낮거나 주의가 산만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최근 급증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결국 모두 기다림이 힘든 아이들이다.
초등 4학년 11살 내 아이 역시 기다림이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기다리기를 정말 못하고 힘들어한다. 재미없다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보거나 읽거나 만지거나 중에 하난 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 아이들 세대는 태어나 여태껏 기다려본 적이 없다.형제가 많고 가족수가 많았던 과거 가족형태는 그래도 자기 순서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녀가 한 명 아니면 두 명. 거기다 각자 1인 1 핸드폰 시대.
태어나보니 핸드폰이 손에 쥐어져 있었고 엄마, 아빠가 손에 달고 사니 우리 삶 속에 익숙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기다림이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일어나 눈감고 잘 때까지 실시간을 핸드폰 카톡과 전화와 sns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다 못해 서로의 모습까지 넘어서 그 배경까지 동영상으로 공유가 가능하다.그래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즉시 궁금한 모든 걸 알 수 있는 지금의 아이들.
그 반면 핸드폰이 없던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약속을 잡지 않는 한 그날 빠이하고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몰랐고 그래서 만나면 더 반가웠다.
기다리며 그 누군갈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함이 더욱더 짙어진다.그 옛날 길 위의 공중전화부스와 밖에 늘어선 줄은 이젠 빛바랜 추억의 그림이 되었다.손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도 마찬가지.
여백의 미같이 언젠가 만나질지 모르는 그 절절한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노래로,그림으로, 소설로도 공감되는 감정과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과연 그 느낌을, 감정을 진정 알고 공감이 될까? 진정 모를 것이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과 함께 긴 글도 읽기 버거워하는 우리 아이들이니.
기다림의 감정을 글로 배워야 할까? 배운다고 과연 알아질까.
그런 면에서 우린 이쪽저쪽도 다 해본 낀세대라 하겠다.
핸드폰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우리완 다르다. 부모세대와 너무 다른 지금의 기다림을 어려워하고 모르는 아이들이 그래서 너무 이해는 되지만, 그 결핍이 주는 큰 구멍엔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삶이란 결코 쉽지 않은 길 위에서 난 기다림과 인사를 건네며, 조금은 여유로운 눈길로 아이들을 만나고 오늘도 기꺼이 기다려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