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생님.
저희 아이 자폐인가요?
반사회성 성격장애 뭐 그런 건가요?
아니면 지능이 떨어지는 건가요?
6세 아이를 처음 데려와 아이 엄마가 나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다.
어디선가 듣고, 보고, 알고 있는 단어나 정보, 지식은 많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 때 비로소 쓰이는지, 진단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너무 조심스러워 감히 꺼내기조차 어려운, 심각한 수준의 장애를 가졌을 때 쓰이는 단어란 것을 정말 알지 못한다.
그 귀엽고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남자아이는 다행히 자폐도 반사회성 성격장애(이건 어린 나이에 진단받을 수도 없다)도 지능이 낮은 수준도 아니다.
다만 아이는 경직되고 아이다운 생기발랄함이 없고 눈치를 보며 선생님인 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한적 없는 아이는 놀이치료실에 처음 들어오면서 처음 본 선생님께 자신이 혼이 날까 봐 걱정되어 들어오기가 무서웠다고 말한다. 이 말과 행동 속에는 아이의 과거가 들어있다. 평소 말썽을 부리고 많이 혼나고 그래서 주눅 들어 있는 상태. 함께 놀이시간을 갖자 그새 자신감이 붙었는지 나의 머리카락을 한주먹 잡고 확 잡아당긴다. 그것은 더 놀고 싶은데 시간이 다되어 더 못 놀게 해서 보이는 속상함의 표현. 아이의 눈을 조심스럽게 맞추며 달래고 웃어주자 금방 주먹 줬던 손에 힘을 뺀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의사를 조리 있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그냥 6세일뿐이다.
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불안정한 정서발달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나이 아이다운 생기발달함과 에너지, 웃음, 자존감 향상, 긍정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등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2
부모의 학력은 높았다.
아빠는 대법원 직원.
엄마는 대학원졸. 고등학교 교사
아이는 올해 유치원 입학하는 5세 여아.
수면문제, 식사습관문제, 최근 성격이 과격해지고 고집스러워진 문제행동과 유치원 등원거부, 아빠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아이의 아빠가 의뢰했다.
아이와의 첫 만남.
대기실에서 만난 아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여린 곱슬머리에 연령보다 작은 체구. 오목조목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 다소 긴장한 듯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건네자 엄마품에 파고들어 결국 엄마도 함께 입실.
엄마와의 분리가 어려워 보여 함께한 후 놀이실 장난감을 고르고 놀기 시작. 잠시뒤 엄마는 아빠와 밖에 의자에서 기다리겠다며 아이에게 설명하고 나갔고 이후 불안한 모습은 없었다.
놀잇감 앞에서 아이가 다섯살 같지 않게 차분하고 급하지 않는 모습에 난 오랜만에 조금 놀랐다. 뽀로로 자판기 놀이방법을 설명 듣고 기다렸다가 자신이 혼자 해보기. 상대방의 요구에 맞게 주고받기.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 아빠에게도 주고 싶다며 음식 놀잇감을 상대방 취향에 맞게 골라 가져다주기까지.
아이의 평가 후 주양육자인 엄마와의 면담이 시작되면 아이가 듣기 때문에 보통 아빠와 아이는 대기실로 이동해 기다린다. 대기실 놀이터가 있어 부녀는 자연스럽게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부녀 사이가 그리 가깝지 않았기에 그 잠깐의 시간도 버티기 어려웠던 아빠. 결국 나와 상담실 초기면접 중인 엄마에게 전화를 자꾸 건다.
다행히 아이에겐 신체, 인지, 언어, 심리사회성 전반적 발달영역에 평균 수준을 벗어난 문제는 없다.
아이가 고집스러워진 건 이제 5살, 자신의 주도성이 길러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에린슨의 심리사회발달이론 중) 또한 아이의 성향상 급하지 않고 무엇이든 진지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대신 한번 적응이 되고 그것이 좋아지면 몰두하고 집중하는 힘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에 따라 부모는 아이의 성격을 이해하고 양육적 접근방법을 그에 맞춰 시행할 필요가 있다. 수면문제나 식습관 문제는 신체, 병리적 문제가 없다면 양육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평가결과상담 중 아이엄마는 과거 임신과 출산 때 힘들었던 자신에 모습을 돌아보며 지금 힘든 상황을 또 토로하며 눈물을 뚝뚝.
결국 아이의 문제보단 부모의 양육스트레스, 부부의 갈등, 초보엄마아빠의 서툰 양육방법으로 인한 어려움이 주된 문제로 결론지어진다.
아이는 평소 늦게 퇴근해 오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본 적이 없어 관계가 좋을 이유가 더 없었다. 정서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함께하기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는 노력쪽보단 일이바쁘다는 핑계만 댄다.
이 아이는 소견상 모든 영역이 평균 수준 이상이라 어떤 다른 평가를 권유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하지만 굳이 언어평가를 받고 싶다는 아이의 엄마. 자신들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으려 하고 아이의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부모.
결국 부모의 선택이므로 난 평가 스케줄을 또 잡아준다.
#3
1년 전 집 앞에 새로 생긴 복합건물 5층에 H치과가 생겼다.
한 달간 개원축하 행사로 만원에 성장판 검사를 해준다는 소문이 주변 아줌마들 사이에서 폭풍처럼 불어왔다.
주변 친구들을 비롯해 우리 집 귀염둥이도 그곳에서 줄을 서 성장판 검사를 한 경험이 있다. 지금 키가 문제가 되지도 않으면서.
솔직히 키가 얼마나 크려나 그냥 궁금해서.
결과는 생각보다 낮은 수치.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정도.
괜히 돈 내고 시간 내서 굳이 알 필요 없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괜히 기분만 나빠져 돌아왔다.
물론 통계상의 결과치를 받은 거니 100프로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좀 더 분발해 보자는 의미로 잠을 더자고 먹을거리를 더 영양식으로 신경 쓰고 운동을 더 하고 등등의 노력을 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요즘은 너무 많은걸 미리 알 수 있어서 오히려 별로인 세상이다라고.
그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2018년 시험을 통과해 임상심리사(심리검사 및 소견을 낸다) 자격증을 받고 상담 시에 더욱 지키는 나만의 약속이 있다.
초반 아이에게 문제가 너무나 뻔히 보여도 단정 짓거나 그것에 대한 무서운 단어나 표현을 절대 쓰지 않을 것.
아이는 발달과정 중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실제로 15년이 넘어가는 임상경험상 정말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좋아지고 변화되는 결과를 난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최근엔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잘 모르거나 반대로 넘쳐나는 지식의 홍수 속에 내 아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진 않은지 너무 예민하게 문제시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안타깝다.
조금은 너그러운 자세와 따뜻한 눈빛으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우리 아이들을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