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도 도망갈 곳이 필요하다.

내가 쉴 수 있는 그곳: 피난처

by HAN

아침 8시 20분.


아이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어젠 비록 우울한 등교전쟁을 치렀지만, 오늘은 봄기운 가득 담아 좋은 하루가 되기를 힘차게 응원하며 별 탈 없이 등교를 시킨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어김없이 조우종의 KBS Cool Fm 라디오를 킨다.

라디오 음악이, DJ의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침의 잔상과 홀로 남겨진 우리 집 공기 속에 살포시 위로를 얹어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바로 화요일.

이호선 교수님의 심리상담 'RGRG 그 맘 알지'이다.


팬이 된 건 어느 날 무심코 라디오를 흘려듣던 중,

너무 내 이야기 같은 사연에 코끝이 찡해진 순간, 그때부터인 것 같다. 이어진 교수님의 해결 답안은 자신도 가끔 감당하기 벅찬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들 때, 혼자 달려가는 자기만의 피난처가 있다고.

그것은 누구나 필요하다고.

그리고 맛있는 와플과 커피를 반드시 먹고 위로받고 온다고.






맞다.

나 또한 그런 곳이 있다.

사람들이 정말 잘 모르는, 그래서 조용하고 편안한 나만의 아지트. 갈 때마다 내가 가진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 올 수 있는 그곳. 굳이 좋다고 소문내지 않는 그곳.



카페 앞엔 몇 대의 차가 겨우 주차할 수 있지만, 언제나 한대 정도만 있거나 없는 한적한 주차장이 있다. 1층 통유리 자동문을 지나서 들어서면 카페 주인장의 친근한 얼굴이 역시 날 반긴다.

서로 많은 걸 알지도 묻지도 않지만 조용하고 수줍게 그렇게 미소인사만으로도 우린 충분하다.


언제나 카푸치노.

하지만 또 가끔은 따뜻한 라떼 한잔과 주인장이 직접 만든 호두 휘낭시에 하나를 쟁반에 받쳐 들고 2층 깨끗하고 한적한 곳, 즐겨 앉는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편안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특히 그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2층 중앙에 자리한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하고 푸르른 고무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팔 벌려 기꺼이 맞아준다.






성인상담이 들어올 때가 있다.

아이문제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자기 문제로 매듭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그렇게 출발하며 초기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어김없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스트레스 관리 상담이다.

평균값은 없다. 사람에 따라 성격에 따라 작은 것도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 장기 스트레스 관리법을 동시에 2가지 플렌으로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까지 권유한다. 그렇게 상담사는 그 길을 안내하고 함께 걸어가 준다.

한 걸음씩 용기 내어 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손잡고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내담자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많이 어려워하는 경우는(대부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100가지 리스트를 뽑아 고르게 하거나 나만의 개인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도 알려주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중 단기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피난처 만들기는 매우 쉽고 추천해 줄 만하다. 피난처의 종목은 당연히 개인마다 취향마다 다르다. 친정집이 될 수도, 산책길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나에게 잠깐의 쉼을 줄 수 있다면 어디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12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가 이젠 더 이상 엄마의 맘처럼 가던 길을 가려하지 않을 때.

나의 상담사례 중 부모상담이 부족해 전화로 보충해야 할 때,

갑자기 닥친 건강문제로 장단점을 무게 달아 나의 수술결정을 해야 했을 때,

삶에 작고 큰 이슈들이 내 맘을 조금은 무겁게 눌러올 때.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찰랑찰랑 가득 찬 잔을 비워내야 할 때,


달려간다.

무겁게 들어갔다 가벼워지는 그곳.

쉼표를 찍듯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그곳.

나의 피난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