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의 명징(明澄)한 기억

부모가 대처해야 할 자세

by HAN

선생님.

사고가 났었어요.


아이는 뒷좌석 내 옆에 앉았고 난 돌쟁이 둘째 아이를 안고 있었죠. 그날따라 수현이(가명)가 안절벨트를 안 하겠다고 떼를 부려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하피림 그날 사고가 난 거예요. 아이는 앞으로 튕겨나가서 제일 크게 다쳤고, 전 둘째를 안고 안전벨트도 하고 있어서 많이 다치진 않았었어요. 2년 전이니까 그때 아이는 6살이었죠. 근데 요즘 얘가 저한테 그때 이야길 해요.

엄마는 그때 자길 지켜주지 않았다고. 왜 동생처럼 자신은 지켜주지 않았냐고. 그래서 자긴 그때 너무 무서웠고 많이 아팠다고.


전 그랬어요. 네가 엄마 말 안 듣고 안전벨트 안 해서 그렇게 된걸. 왜 엄마를 원망하냐고. 엄마 탓이 아니라고 니 잘못이라고요.


난 그만 눈물이 왈칵 났다.


"어머니. 수현인 그때 겨우 6살이었어요. 6살 아이에게 네가 안전벨트를 안 했잖아라고 아이가 사고로 다친걸 탓하기엔 너무 가혹해요. 아이입장에서 자기도 어렸는데, 동생만을 안아주고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엄마를 원망할 수 있어요.

진심으로 그때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아이에게 사과하세요."



수현이의 외상은 다 나았을지 몰라도 내상은 2년이 지났지만 낫지 않고 그동안 가슴속 깊숙이 남아 있었던 것. 지금까지 그걸 기억하고 잊지 못한 아이. 그동안 상처로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어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와 세상속에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지금에서야 용기 내 밖으로 내뱉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자존감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정상적 성장발달에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중 주도성의 발달시기이기도 하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터져 나오지 않았다면, 수면 위로 나와 해결되지 않았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그 응어리진 감정이 시한폭탄이 되어 터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인 수현이는 ADHD의 주의력 문제와 과잉행동 문제를 둘 다 가진채 나에게 온 8살 남자아이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첫날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든 아이.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얼마큼 어떻게 화나게 해야 자기를 혼낼까라고 테스트해 보듯이. (안타깝지만 생각보다 이런 아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장난감들을 쏱았고 던졌고 한 가지 놀잇감을 꺼내어 노는데 3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 꺼내기를 반복했다. 다 재미없다며. 대화를 하기보단 대부분 소리를 질렀고 거칠게 주먹을 휘둘러댔다.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목에 걸고 온 스마트폰. 게임 속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충분히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남들과 소통하지 않아도 되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을 혼내거나 화내거나 하는 존재도 없었다.


엄마는 어린 둘째, 셋째 아이를 키우기 바빴고, 아빠는 밖의 일로 항상 역시 바빴고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수현이는 애정을 주고 신뢰로운 관계를 맺는 건강한 타인과의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친구와 사귀는 법도, 노는 법도, 싸우고 화해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또래관계도 항상 투닥투닥 싸움으로 끝났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맨 뒤쪽에 서있었던 수현이 아빠. 그리고 서성이다가 문이 닫히고 결국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의 상담이 시작된 후 한 달이 지났을 때쯤 문 앞에서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부모상담시간에 아이에 대한 이야길 나누자고. 기분 나쁜 얼굴표정 가득 안고 상담실에 처음 들어온 수현이 아빠는 말했었다.

" 제가 왜 이런델 와야 합니까. 전 제 아이가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린 주 1회 매주 만났고 3개월이 지났다.

상담실에서 수현이는 나와 애정과 믿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차곡차곡 쌓았고 맺었다. 함께 스마트폰 속 게임이 아닌 함께해 더욱 즐거운 다양한 보드게임(다트게임, 할리갈리게임등)을 하며 수십 번도 더 이겨보는 경험을 했다. 아이는 똑똑했고 선생님이 자신에게 져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기편인 스마트폰 속 게임 이야기나 관심종목 찾아보기를 우린 함께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 게임시간과 보는 횟수를 아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는 상담실 속 규칙과 생활 속 약속을 하나씩 지켜나가는 연습도 했다.


아이는 정말 많이 변했다.

겨우 3개월 만에. 아이가 달라지니 자연스럽게 엄마,아빠의 얼굴표정과 말투도 많이 변했다. 아빠는 이제 상담실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나에게 웃으며 인사도 한다.


이제 난 수현이와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 중이다.

그사이 아이의 엄마가 오히려 상담자와의 관계 속 분리불안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딘가로 갑자기 떠나는 게 아니다.

상담사로서 언제나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튼튼한 울타리처럼 8살, 9살 점점 더 건강하게 커나갈 수현이와 그 가족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