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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Oct 04. 2023

보호받는 성벽요가

미술치료 영역 중에

'빗속사람 그림검사(PITR : Person-In-The-Rain)'라는

진단검사가 있다. 내담자의 현심리와 스트레스 상황, 그리고 심리적 대처능력등을 잘 파악해 볼 수 있어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자주 심리진단 검사다.


비 오는 날 거리에 자신의 모습을 대부분 그리게 되는데 여기서의 포인트는 비의 강도나 정도.

그리고 우산, 우의등의 보호도구를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의 여부다.


20대 초반 한창 세상을 향해 나가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던 그때, 그룹미술치료를 받으며 어느 날 그렸던 그림 속 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산하나 없이 온전히 그 비를 온몸으로 다 맞으며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땐 몰랐다.

당시 내가 살기 위해 얼마나 홀로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는지.

누구나 그렇듯 깜깜한 앞날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무 준비 없이 마주하고 있었는지.

당시 미술치료사 선생님이 분석해 주기 전까진 몰랐었다.


 값진 경험과 깨달음 이후 끝도 없이 느껴졌던 어두운 터널의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전투적으로 뛰어들기 위한 내 방어막과 능력치를 높이고 만드는 시간들을 계획하고 그 길을 찾아가게 된다.




요가를 한다.

내 맘대로 이름 붙인 보호받는 성벽요가다.


어느 순간 어른으로 살면서 체력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집 근처에서 요가원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20대, 30대,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정착지를 찾진 못했고 매번 실패.

원마다 선생님마다 너무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기에 적응기를 넘기지 못하고 매번 오래가지도 못했다.


너무 땀 흘리는 것도, 너무 힘든 자세도 내 몸을 더 아프게 만드는 부작용만 낳았다. 또 매번 자세 지적과 잘 따라 하지 못해 혼남으로 주눅 들고 자신감만 줄어드는 씁쓸한 경험들도 쌓여갔다.

그렇게 요가 정착지가 없던  병원행만 점점 더 잦아지고 고질병인 목디스크와 어깨에 허리까지 삐걱삐걱 움직임이 무겁고 힘들어지던 어느 날.

집 앞 새 건물에 들어선 따뜻한 이름의 요가원이 생겨 용기 내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예쁜 미모의 원장님과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소규모 그룹요가를 시작.

실패의 기억들로 시작의 용기가 필요했다.

분위기는 비슷해도 두 분 정도 선생님들의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고 한 선생님과  꾸준히 하게 되면서 나의 삶에 적응의 시기와 생활루틴이 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 정도.


이곳의 포인트는 명상요가.


잔잔한 음악 또는 맘을 울리는 인도음악 같은 여성보컬의 묵직한 목소리가 때론 편안함을 때론 가슴깊이 감동의 눈물을 선사해 주었다.

주로 과격한 운동량과 땀보다는 몸의 곳곳에 숨어있는 근육들을 천천히 풀어주고 섬세한 자세의 작은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처음엔 그냥 스트레칭인가, 이게 운동이 되는 게 맞나 싶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어떤가 물어보면 살을 빼려는 목적으로 한다면 여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목디스크가 있는 나를 아시고 알아서 무리한 동작에선 제외시켜 주시는 선생님이 점점 편안 해질 때쯤.

4명 정도가 모든 그날의 동작과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무리 명상시간이 되어 편안한 자세로 매트에 누웠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와 극세사 포근포근 담요를 두껍게 내 머리를 살짝 들어 배게처럼 아래에 넣어주시곤 손으로 직접 머리 주변으로 담요성벽을 쌓아 내 머리가 마치 주변으로부터 따뜻한 보호막을 한 듯 만들어주셨다. 그리곤  마무리 명상시간을 가졌다.

감은 두 눈엔 적당한 무게의 허브향을 뿌린 매실주머니를 얹어주시며 10분 정도 그렇게 시간이 잠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가 소중한 보물처럼 받들어 올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든 순간,

타임머신을 탄 듯 문득

20여 년 전 그때 그 그림 속으로 돌아갔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산도 없이 온전히 내리는 모든 세상의 비를 다 맞아주리라 는 듯 길에 하염없이 혼자 서  있었던 나.

아무것으로도 보호할 게 없던 나. 그래서 스스로 치료실을 찾았던 나.


지금 이 따뜻한 요가가 최근 세상살이 중 가슴 아픈 몇 가지  일들로부터 지금은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보호해 주고 위로해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요가든 치료든 그 무엇으로든 때론 쉽지 않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이어가는데.

우리를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는 성벽 아이템이 그대에겐 있는가.



(그림: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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