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를 읽기 전과 후의 인생

by HAN

책에 참 인색했다.

한마디로 좋아하지 않음.


어릴 때부터 나름 틈틈이 읽어줬지만 아이는 책보단 장난감을,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기보단 밖에서 뛰어놀기를 훨씬 더 선호했다. 그래서 그저 어릴 땐 신나게 뛰어놀아야지라고 막연히 놀이에 더 포커스를 둔 건 사실이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과의 2학기 상담주간 때.

코로나로 인해 대면이 아닌 전화상담으로 대처해 진행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부족한 점을 꺼내신 선생님.

어머니. ㅇㅇ은 체육, 미술은 참 잘하는데 문해력이 좀 부족한 거 같아요. 가끔 보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부분에서 좀 어려워하곤 해요.

6세 때 유치원 선생님의 한글 좀 가르치세요. 다른 아이들은 다 읽고 쓰는데 00만 못해요 란 말 이후 실로 오랜만에 두 번째로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다음부터 무슨 이야길 어떻게 마무리하고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내 머릿속엔 문해력이 부족해요란 그 문장만이 깊이 새겨져 있을 뿐.


그렇게 아이는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책과의 거리가 멀어지는듯해 정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생각될 때쯤, 아이의 나이는 10살.





1년 전.

같이 놀던 오총사(다섯 명의 유치원 고추친구)중 두 명의 친구가 2학년 때 벌써 해리포터를 읽고 끝냈다는 이야기가 아이의 귀와 입을 통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이김에 묻어가자란 생각으로 용기 내어 살짝 들이대어 보니 얼른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아이. 영화도 전체적으로 어두워 무섭고 재미도 없다며 노노. 나의 조급한 욕심은 그렇게 깨지고.

1차 시도는 실패.


에잇. 모르겠다.

읽지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 넌 일단 보류.

아이는 제쳐두고 나라도 보자란 생각에 23권짜리 전권을 정독으로 2번 내가 먼저 읽었다.

그사이 아이는 3학년이 되었고 2차 시도의 시기를 기다리던 난 방법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그리고 선택한 건 영화 먼저. 한 살 더 먹었으니 영화를 다시 보여주면 읽을까 싶어 함께 유튜브 시청을 해봤다. 너무나 책의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간단하게 축약해 중요한 부분만 딱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는 영화. 그 내용은 아이가 배경을 정확히 알고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을 이해하며 스토리를 부드럽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아이 곁에서 장면에 대한 상황 설명과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에 대해, 해리의 타고난 천재적 마법능력에 대해, 볼드모트와 주인공 가족들의 죽음에 대해 등등을 설명해 주며 보았다. 아이는 다행히 마법, 선과 악의 싸움등을 좋아해 점점 더 재밌어하고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영화 1편 마법사의 돌을 보고 난 후.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응. 책에 더 자세히 나와있어서 알아. 그리고 책이 엄만 영화보다 좀 더 재밌더라. 그쯤 되자 아들 왈.

그럼 나도 책을 한번 볼까?

이렇게 시작되어 영화에서 책으로 책에서 다시 영화로를 1편만 반복해서 여러 번 본 것 같다. 그렇게 2편, 3편도 영화와 책을 왔다 갔다 하며 보던 아이는 점점 알게 되었다. 책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단 것을. 그래서 엄마가 자신에게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도 해주고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단 것도.

물론 틈틈이 아이가 책을 보다가 원하면 언제든 내가 읽어주기도 했다.

뒤로 갈수록 책을 보고 난 후 영화를 보는 게 훨씬 영화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선 캐릭터에 대해, 스토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떤 캐릭터가 더 좋냐 싫냐부터, 그 인물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나등등.

좋아하거나 미운 캐릭터는 계속 읽고 볼수록, 바뀌고 바뀌면서 계속 봐도 더더 몰입하고 더 재밌어하는 신기한 모습을 아이는 보여줬다.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책을 찾은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2년째 열다섯 번도 더(그 이상은 더 세어보지 않았다) 무한반복 해리포터 책만 보는 아이가 될 줄은.




아이는 그러면서 달라졌다.

생각머리도, 생활모습도 변했다.

내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놀다가 갑자기 해리포터를 보고 있고, 책을 보자면 당연히 해리포터만 보고, 자라고 하면 해리포터를 읽다 잠들고, 학교에서 보겠다며 해리포터 책만 2년째 들고 다니고 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도 무엇을 하는지 보면 소파에서 해리포터 책을 읽고 있다.

어느 순간 아이는 쫓기는 듯한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휴식과 안식을 그 책에서 찾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몇 번을 반복해 보다 6개월 정도 지나니 멈췄던 것 같다. 원서는 살짝 들이밀어 봤지만 볼 거란 기대는 당연히 엄마욕심.


워낙 책을 안 좋아했고 가까이하지 않았던 아이라 강제독서 시간을 억지로 가져야 했었다. 그랬던 아이가 이렇게 변했기에 다른 책을 전혀 보지 않는단 단점이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4, 5학년 담임선생님께는 다행히 문해력에 대한 지적을 듣지 않았다.

해리포터를 읽기 전엔 긴 지문이나 책에 글이 많은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아이가 이젠 제법 볼 수 있게 되었다.(물론 다른 책은 강제독서 시간이나 숙제로만 본다)


그리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이가 예전에 비해 좀 생각이 깊어졌다, 똘똘해졌다, 이해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대화를 할 때, 생각을 할 때, 글을 어쩌다 쓸 때, 다른 문장제 수학이나 교과서등을 풀거나 볼 때 등을 종합해 보면 그런 것 같다.




해리포터를 알기 전과 후의 달라진 점을 아이에게도 물었다.

읽기 전엔 재미없어 보였다. 그러나 읽고 나선 재미있단 걸 알게 되었다고. 또 마법이나 마술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아이의 관점은 나와는 확연히 달랐지만,

무엇이 됐건 아이의 열두 살 삶에서 해리포터 책은 그것을 알기 전과 후로 크게 달라졌고 변했다.



오늘도 소파에 누워 불사조의 기사단 2를 보며 마치 처음 보는 책인 양 그렇게 재밌다고 혼자 키득키득 웃고 있는 아이.

그리고 이 그림이 대체 언제까지 갈지 진정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림출처:pixb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