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손 아빠, 똥손 남편

오늘도 달려보자.

by HAN

삐. 삐. 삐.

pm 9:00 정각을 울리는 알람소리.

땡.

시작됐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9시 1분 그리고 2분이 지나고 벌써?? 끝!

3분도 되지 않은 시각인데 1부, 2부 총 80명의 신청 인원은 그렇게 마감되고 말았다.

정말 대. 단. 하. 다. 란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아싸! 됐어! 해냈어!

그 와중에 남편은 금손이었다. 정각에 1등으로 아이의 이름을 올렸다. 이어 2분 17초에 김ㅇㅇ. 외부인으로 함께 부탁받은 아이절친의 이름도 당당하게 태권도 밴드 게시판에 정확히 올라가 있었다.

아빠 짱! 최고야~~


그것은 바로 아들의 태권도 주말 1시, 3시의 마술쇼 프로그램 신청.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건지. 이 놈의 프로그램 인기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6년 12월 추웠던 겨울 어느 날.

이른 새벽부터 4살의 쿨쿨 한참 신나게 자고 있는 아이를 안고 남편과 나는 그 추운 겨울날씨를 뚫고 집을 나섰다.

이 근방에선 인기가 가장 많은 숲 00 유치원과 반 0 유치원.

시설 좋고 방과 후 프로그램이 빵빵하고 영어, 요리, 외부 체험 수업 등이 다양하게 있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날은 그중 한 곳에 아이를 들어가게 하기 위해 부모들의 치열한 추첨이 있던 날.

당연히 일찍부터 줄을 서고 종이에 번호를 적어 넣고 추첨을 통해 번호가 불려야 했다. 그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유치원 근처에 가니 벌써 유치원 앞 차도는 추첨 때문에 줄을 선 차들로 주차장을 이뤘고 우린 그 중간 어디쯤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 안에서 아이와 난 기다렸고 아이아빠가 뛰어가 상황을 보니 이미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고.

겨울 추위 속에서 남편이 줄을 섰고 차례가 되어 아이의 이름을 적어 넣은 뒤 결과를 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듯하다.

한참뒤 차 안으로 뛰어들어온 빨갛게 상기된 남편의 얼굴은 짙게 굳어져 있었다.

떨어졌어..

헉. 망했다 싶었다. 설마 그렇게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 그땐 왜 그랬는지.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당연히 우리 아인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이를 원하는 유치원에 못 보내게 됐다는 생각에 남편이 그 순간엔 꽤 원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속으로 아니 남들 다 붙는 그걸 왜 못했지라며.

사실 그건 그냥 백퍼 운이었던 것을!


그 후로 여기저기 근처 괜찮다는 유치원을 알아보고 다녔지만 그때마다 똑똑 떨어졌었다. 이미 마감이란 쌀쌀한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그토록 보내길 원했던 그 떨어진 유치원 원복을 입고 가는 다른 집 아이를 보면 부러웠고 똥손 남편이 문득 떠오르며 씁쓸한 감정이 올라오곤 했던 그때의 나.


그 이후 아이는 집 근처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난생처음 들어보는 e00유치원이란 곳에 마침 자리가 있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무탈하게 3년간의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보통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잘 다니고 졸업했다.





지금은 결혼 14년 차.

아이는 12살. 이젠 초등 고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의 삶에는 생각지도 못한 크고 작은 줄 서기와 운빨이 있거나 또 없었고 시기마다 종목마다 꽤 많이 그것을 반복해 오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난 우리가 금손똥손의 삶을 살 줄은 몰랐다.

원하는 것이 되면 그냥 너무 기뻤고 또 떨어지면 씁쓸한 고배를 마시지만 다음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항상 생각보다 똥손으로 붙지 않았다고 하늘이 무너진다거나 하는 엄청난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도 항상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이가 어릴 땐 왜 그리 떨어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이 안절부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던지. 결국 아이는 대단한 걸 할 수 있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도 아닌데, 그저 집 가깝고 푸근한 선생님만 잘 만나면 됐던 것을.


우리는 그렇게 또 그 시간을, 세월을 겪고 지나고 봐야 알게 되는 게 있다. 나이는 내게 조금은 삶을 대하는 여유를 준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원하는 그 순간이 닥치면 꼭 아빠가, 남편이 금손이길 바라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