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우리 반에 서ㅇ이라는 친구가 자기 영어학원에서 오늘 단어시험 본다고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그걸 보고 있는데, 글쎄 50개나 되더라고. 그것도 다 엄청 긴 단어들이었어. 어휴. 난 슬쩍 보니까 어려워서 하나도 모르겠더라니까.
으아~세상에~너무 많지 않아?끔찍해. 진짜 대박이지?
그러네. 좀 많네. 걘 정말 힘들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곧 자신에게도 닥칠 일이란 걸 몰랐던 아들램, 그리고 나.
며칠 후,
아이가 레벨테스트를 보고 들어간 엠ㅇㅇ영어학원에서도 같은 개수인 50개 영단어 시험을 본다며 외워오라는 숙제가 나온 것!
요즘 영어학원마다 단어시험은 50개라고 약속이라도 한 걸까? 아이가 처음 가는 영어학원이라 적응을 잘하길 내심 기도하고 있던 나로선 그놈의 단어시험이 왜 이리 과하게 느껴지는지. 반 친구 얘기할 때도 같이 어머어머 하며 맞장구 쳐주던 나로선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
아우! 내가 이 많은 단어를 다 어떻게 외워!
학원을 등록 후 수업 첫날. 가기도 전부터 짜증을 잔뜩 부리는 아들을 첫날이니 넌 시험 안 볼 거라느니(독감 걸려 빠지다 진도 중간에 들어감), 갔다 오면 엄마가 아는 기똥찬 방법이 있다고 걱정 말라며 위로하여 겨우 보내긴 했는데 머리가 띵해왔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영어학원 단어시험의 고난 적응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결국, 내가 40여 년간 살아오며 듣고 배우고 직접 해보고 터득한 수많은 단어 외우기 방법 중 단연 최고의 방법을 아들에게 전수하기에 이른다.
우선 50개를 빠르게 한 번씩만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색깔펜으로 체크한다. 약 5분 걸린다. 그리고 난 후 10개를 한 번씩만쓰며 외운다. 아들은 그 한 번도 쓰기가 귀찮다며 머릿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외웠다. 약 15분 걸렸다.
총 20분이다. 매일그렇게10개씩.
그다음 날도 같은 방법으로 빠르게 전체 한번 읽고 그다음 10개 단어를 외운다. 이것을 5일 하면 전체 50개 단어를 최소 다섯 번씩 내가 만났기 때문에 익숙해지고 쉽게 외워진다.
아들은 일주일 동안 50개 단어이기에 이틀의 시간여유가 더 있었고 스펠링까지 외우고 그 무시무시한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는 쾌거를 보였다.그러면서 다른 아이들은 재시험을 보기 위해 남아 보충수업을 듣는데 자신은 아니라며 자랑스럽게 으스대는 아이.
몇 주 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여자아이 엄마와의 전화통화. 그렇게 단어시험을 못 봐서 매번 재시험과 보충수업을 듣는다며 속상해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자기 아이를 놀리기까지 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의 단어공부 영업비밀을 시원하게 말해쥤다고 아들에게 말하자.
자기만 알고 있어야 하는 그 비법은 왜 알려줬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아들! 네가 또 모르는 게 있어.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아는 대로 실행에 옮겨야 그게 제대로 결과가 나오는 법! 요즘 세상에 찾아보면 다 방법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정보는 넘쳐나.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게 그대로 실천하는 거거든.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엄마는 한평생을 영어공부를 하며 알게 된 노하우를 자신은 그 과정 없이 너무 쉽게 알게 되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좀 더 간절하지 않아서일까. 다른 방법들을 안 해봐서 비교를 못해봐서일까. 아들은 점점 그렇게 하지 않고 힘들게 날짜가 닥쳐서 급하게 단어를 외우려거나 전체를 한번 보는 것을 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재시험에 보충수업 당첨까지. 그러면서 힘들어하고. 난 옆에서 그걸 보고 또 답답해져 점점 잔소리가 늘어날 때쯤.
남푠에게 하소연하니 조용히 듣곤 하는 말.
냅둬.하기싫으면 하지 말라 그래.시험 망쳐보고 자기가 알아야지.
안다. 너무 잘 안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실패하고 다시 자기 방법대로 해보고 안 외워가서 빵점도 받고 재시험도 보면서 부딪혀 봐야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간다는 걸.
하지만 역시 답답한 건 나일 뿐인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과연?) 말한다.
깜깜한 밤에 엄마가 먼저 그 길로 가봤더니 구덩이가 있는 걸 알았어. 넌 구덩이가 없는 안전한 길로 가라고 말해주면 넌 어떻게 할래?라고.
엄마는 가봤고 해 봤고 그래서 최고 좋은 방법을 너에게 가르쳐주는데 굳이 네가 그 길로 가고 싶고 구덩이에 빠져봐야그곳에 구덩이가 있는지 알겠다면 빠져보라고. 더 말리진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