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랬다.
2학년 담임샘의 2학기 상담주간 전화통화에서.
아이가 문해력이 부족하니 집에서 책을 좀 읽히는 게 어떻겠냐는 수화기 너머의 이야기.
순간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머릿속은 하얗게 충격으로 휩싸여갔으며 어떤 대답으로 그날의 통화를 마무리 지었는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 아이와 함께하는 강제독서시간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집중한 3년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방법은
첫째, 편독 상관없음.
둘째. 보상은 화끈하고 즉각적으로.
덧붙여보자면 보상은 아이가 (정해준 한도 내) 당연히 골랐고, 그것이 장난감이든 오락실 찬스든 만화책 타임이든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그와더불어 나도 책 읽은 엄마가 되어있었고 작년부턴 쓰는 엄마까지 되기에 이른다.
셋째, 한글책 영어책 쉬운 책 레벨은 전혀 상관없음.
넷째, 공부는 독서 다음순위로.
ORT
네잍더그레잇
드래곤마스터
해리포터시리즈
스무고개탐정 시리즈
셜록홈스
리틀팍스의 저니투 더 웨스트 시리즈
로얄달시리즈
Geronimo Stilton시리즈
해리포터 원서
2학년 2학기부터 시작해서 5학년 2학기까지 이 순서로 현재까지도 아이가 무한반복 중인 한글책, 영어원서 목록이다.
내 아이는 한 분야에 꽂히면 무한반복 최대 3년까지 가는 특이한 성향을 가졌다. 독서에만 국한된 건 아니라 음식. 놀이. 취미생활 등 생활전반에 걸쳐 유아기 때부터 나온 신기한 모습이다. 물론 그보다 약한 버전이지만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라 전혀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또래를 볼 때 분명 일반적이진 않다.
이 상태로 초등 졸업 때까지 가져갈 계획이었으나 5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이와의 대화 끝에 너무 큰 편독의 단점을 진단 내리고 책목록이 꽤 훌륭한 논술학원에 올 겨울방학 동안만 다녀보기로 합의하고 현재 도전 중이다.
지금의 5학년 아이가 예전과 달라진 점은 쉴 때도 가끔은 해리포터를 꺼내어 한시간이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해 책을 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분명 생겼고 독서시간을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는단 점이다.
언젠가 아이가 더 크고 초등시기를 되돌아본다면 단 하나의 후회 없는 독서습관 만들기였음을 뿌듯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아이의 상태를 냉정하게 말해주시고, 뼈 때리는 큰 충격을 안겨주신 2학년 담임샘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림출처:pixb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