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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14. 2023

오늘도 속았다.

사춘기 터널 속 진입

알지만 속는다.

알고도 속아준다.

그것이 맞는 걸까 속에선 두 마음이 갈등한다.




치킨 냄새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자기 뒤를 따라왔다며 오늘은 무조건 치킨데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저녁메뉴를 통보하는 아이.


그래그래. 나도 오늘 딱히 입맛도 없고 메뉴도 생각나지 않았어 아들.

그렇게 우린 아들의 큰 그림으로 치킨저녁마치고.


폭풍설거지와 마무리로 오늘의 주방퇴근을 서두르는데,

어느새 열공하신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아들.


왠지 조용하다.

그래. 열심히 공부모드인가부다. 그렇게 혼자만의 착각 속에 빠져드며 맛있는 디저트를 서둘러 준비하고.

 

아들이 최애 하는 거봉을 씻어 쟁반과 함께 문 열린 아들방으로 급습 아닌 급습을 하게 되는데..


화들짝 너무나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만 헉.


1차 깊은 마음의 소리를 그만 들키고.

2차 손에 있던 무언가를 다리 사이로 감추고.

3차 아무 일 없었다듯 시선은 책으로 급하게 돌리고.


이건 뭐지.

열공이 아닌 열폰질을 하고 있었단 배신감에 순간 욱하는 화가  가슴속에서부터 치솟지만,

3차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애써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냥 지나가 달라는 아들의 무언에 공기 속 감춰진 감정들이 사실은 나에게 순간 느껴졌기에.


그냥 포도쟁반을 조용히 아이의 곁에 밀어놓곤 뒤돌아 나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보는지.

대체 어디에 그렇게 넉이 빠져있는지.

또 내가 방을 나가면 엄마눈이 없어졌으니 맘 놓고 신나게 딴짓을 하진 않을지.


무수히 많은 의미 없는 질문들이 사춘기 아들방 밖에 서있는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그냥 머리를 흔들어 다 지우개로 애써 지워버린다.


오늘도 그렇게 난 아들에게 속고 또 속아준다.

아들과 나의 굳건한 믿음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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