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 킬로미터의 위로

달리는 것들은 결국 멈추지만, 추억은 남는다

by 미쿠

우리 집에는 8년 동안 함께한 르노 ‘QM3’가 있다.

구매할 의향이 전혀 없었지만 연비가 뛰어나고 5년 무이자를 해주겠다는 딜러의 말에 속아 구입하였다.

-르노 자동차가 변태적인 성향이 강하여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 것 같다.

부품이 전부 스페인에 있어서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데 수리비가 장난 아니게 많이 든다.

-확실히 연비가 좋아 기름을 한 번 넣으면 편도로 부산을 가면 기름이 두 칸 정도 남는다.

-이제는 부품이 없어 수리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럴 때면 나는 ‘기어코’ 부품을 찾아낸다.


어떤 이는 낡은 차를 과감히 팔고 새로운 차를 구입하는 걸 선호하지만 나는 큐미를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그 공간에는 많은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출고된 지 일주일 뒤에 반려견이 죽었다. 살아생전 닿지 못한 채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터져버린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핸들을 부여잡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해가 동트기 전 가락시장에 고기를 떼러 가다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지게차와 사고가 나기도 했고, 누군가가 고의로 갖다 놓은 종아리까지 오는 바위와 부딪혀 범퍼가 파손되기도 하였다.

•보험처리하기 애매해서 자비로 수리를 하러 여러 군데 공업소를 돌아다녔지만, 금액이 내 생각이랑 맞지 않았다. 한 곳만 더 가고 결정하려고 마지막 수리센터를 방문했다. 혼자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자동차 상태를 보시고 35만 원을 부르셨을 때 나는 그저 침묵을 선택했다. 그런데 갑자기 30만 원으로 가격을 내리셨다. 그리고 내가매몰차게 등을 돌리니 간절한 목소리로 “25만 원!”을 부르셔서 결국 그곳에다 맡겼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흥정을 한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장사를 할 때,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들을 큐미로 모셔다드렸다. 그게 어느 순간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꽤 붐볐었다.

-한때는 번아웃이 와서 매일 열던 가게 문을 닫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즉흥적으로 강릉에 갔다. 때마침 부산에 살던 A한테 연락이 와서 곧장 ’7번 국도‘(바다를 옆에 끼면서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 걸리는코스이지만 바다를 만끽하고 싶어 장차 6시간을 달려 부산에 도착하였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단골 코스인 외곽순환 고속도로 (성남-평촌)를 스트레스 없이 엑셀을 밟는다. 그러면 머리에 폭포수를 맞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업이 어려워져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장사를, 퇴근하면 큐미로 쿠팡 배송을 하여, 지친 나를 많이 달래주기도 하였다.

사업을 정리할 때쯤 퇴근 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차에 앉아 미래 방향을 재건설하기도 하였다.

-나도 늙어가는 것처럼 큐미도 예전처럼 엑셀을 밟으면 경쾌하게 나아가질 않는다. 이제는 보내줄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있다.

-이후 나는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하였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차에 적응이 되질 않는다.


120,000km 되었을 즈음,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정비소에 방문하니 이제는 장거리 운전을 자제해 달라고 나에게 요청하였다.


“자기야 나는 너를 매일 다른 이유로 더 사랑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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