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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Apr 01. 2022

12화. 의사 선생님, 그래서 제 눈은 언제 낫나요?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퇴원 후 첫 외래 진료



 코로나 격리기간 1주 + 회복기간 1주의 시간을 보내고, 퇴원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외래 진료를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가 그 상태 그대로 입원해있었고, 퇴원할 때 역시 습기 찬 방호복과 방역 택시 안에 갇혀있느라 여전히 이 병원의 외관을 모르는 상태였다. 이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당했는데도 정작 난 이 병원이 어떻게 생긴 지조차 모르는 게 왠지 아직도 억울했다. 이번엔 꼭 어떻게 생긴 병원인지 너 얼굴 좀 보자 이런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아직 눈이 안 좋아서 운전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남동생이 오늘의 진료 메이트가 되어 날 데리러 왔다. 간만에 동생을 보니 좀 들떠서 차 타고 가면서 계속 시시덕댔던 것 같다. 오늘 검사가 아플까 봐 좀 걱정했었는데, 동생과 되도않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다 보니 맘이 한결 나았다.

 

 이 날은 회사에 복귀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진료 때문에 또다시 하루를 쉬어야 했다. 회사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30분 이상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가면서 창밖을 보니 정말 이상했다. 차 번호판도, 스쳐 지나가는 나무도,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아 보려고 애쓰다가 금세 어지러워지는 것이, 마치 모든 세상이 내가 아프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만 같았다.(퇴원하니 살만 했나 보지? 너 아직 눈 상태 이래!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날 곁눈질로 본 동생은 그냥 눈을 감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가면서, 지금 창밖에 보일만한 풍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이대목동병원에 가기 전에 자궁내막종 수술을 받았던 목동의 한 여성병원에 들러 수술기록을 떼었다. 연관이 없었다고는 하나, 좀 더 확실히 살펴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세세한 진찰 기록까지 모두 챙겨 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동네에 들어섰다. 여기저기 보이는 하얗고 큰 굴뚝! 내가 코로나 확진되고 잠시 빈 병실에 갇혀있을 때 본 그 굴뚝이었다. 왠지 모르게 반가워서 보고 있으니 동생이 저 앞이 이대목동병원이라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오래되어 보이는 외관이었다. 내가 일주일간 너무도 힘들게 지냈던 그 병원이 바로 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드디어 얼굴을 마주했다.(사실 날 살려줬으니 고마운 곳이기도 하고, 동시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싫은 곳이기도 하다.) 주차를 하고, 동생과 함께 병원 입구로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문진표 작성이나 굿닥 QR체크인을 통해 종이 출입증을 발급받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첫 진료는 12시의 부인종양과였고, 그다음 1시 45분에 신경과 진료가 잡혀있었다. 부인종양과는 기존에 치료 중이던 자궁내막종 때문에 잡힌 진료였다. 본관이 아니라 별관인 여성암병원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처음 찾아가 보는 거라 잠시 길을 헤맸다. 위치가 하필 암병원인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별거 아닐 거면서 왜 무섭게 그런 데서 진료를 보고 그런담.) 당연한 소리지만 부인종양과에 도착하자 정말 여자들만 가득했다. 젊은 남자가 이곳에 오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남동생이 그 속에서 좀 튀어 보이긴 했다. 예약시간보다 30분 일찍 왔는데도 간호사가 2시간 가까이 지연되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했다.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하고 이것저것 검사도 받으며 진료를 기다렸다.


산부인과에 홀로 앉아있는 시꺼먼 동생. 왜 저리 도둑처럼 입고 왔지.

 

 기다리다 남은 내 체력을 다 써버릴 것처럼 정말 끝도 없이 기다렸다. 다음 신경과 진료가 1시 45분이라 발을 동동 굴렀는데 결국 1시 반까지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차례가 오면 따로 빼놓을 테니 우선 신경과부터 다녀오라고 했다. 동생과 함께 다시 본관의 신경과로 향했다. 신경과는 입원해있을 때 종종 휠체어를 타고 끌려왔던 곳이었는데, 로비에서 신경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니 왠지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눈은 잘 안 보였어도 지나간 곳이라는 걸 몸이 기억하나 보다.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잠시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금방 끝날 줄 알고 아침도 먹지 않고 왔던 동생은 마실 거라도 사기 위해 잠시 편의점에 갔다. 홀로 남겨져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경과에는 여러 방들이 있었는데, 그 문마다 내가 입원 중에 했던 검사 이름이 쓰여있어 자꾸만 그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나는 검사 시간들을 곱씹어보면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입원해 있을 때 종종 회진을 오시던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계셨다. 의사 선생님이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발병에 많이 놀랐겠다면서 지금은 좀 어떤지 물어보셨다. 나는 잘 안 보이는 눈과 어지럼증 등 모든 증상들을 늘어놓았다. 내 얘길 들은 선생님은 우선 복시가 사라졌다니 다행인데, 흐리고 번지게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하셨다. 나는 혹시나 놓칠까 싶어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적어갔고, 선생님에게 하나하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혹시 나와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상담 내용을 간단히 적어보겠다.




Q. 뇌경색 발병 이후 눈이 잘 안 보여요. 업무상 하루 7시간 이상 컴퓨터를 쳐다봐야 하는데, 시력 교정 안경이나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써도 되나요?


A. 실제로 시력이 떨어졌다면 시력교정 안경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력과 별개로 뇌경색으로 인해 뇌가 그렇게 인지하는 거라면 오히려 악영향이 될 거예요. 대신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은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Q. 눈이 제대로 안 보여서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어지러운데, 제 눈은 언제쯤 나아질까요?


A. 뇌경색 환자의 회복기는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입니다. 6개월은 기다려봐야 해요.




Q. 약 복용 이후 양치할 때마다 잇몸에서 피가 많이 나요. 약 때문일까요?


A. '아스트릭스'라는 약에 피를 흐르게 하는 성질이 있어서 지혈이 잘 안 되고, 멍도 잘 들 거예요. 약 복용 중에는 절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그중 잇몸이 가장 취약하고요. 오히려 젊을수록 이 약을 먹었을 때 잇몸에서 피가 잘 나요. 약을 끊을 수는 없으니 사실 조심히 닦는 수밖에 없어요. 출혈이 너무 심할 때는 칫솔질 대신 가글로 해결하는 게 좋습니다.




Q.  뇌경색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


A. 일단은 마음을 좀 내려놓으시고...그냥 앞으로 계속 먹는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아요. 이 약을 먹어도 100프로 예방되지는 않는 마당에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문제가 없더라도 예방을 위해 꼭 복용하셔야 해요.




Q. 눈 재활 방법은 없나요?


A. 뇌경색으로 인한 눈 증상은 사실상 재활법이 없어요. 현재 시력은 양 눈 모두 1.0인 것을 보니, 실제로 시력이 나쁜 게 아니라 뇌가 그렇게 지각하는 케이스예요. 시력을 담당하는 시신경이 아니라 눈 운동신경에 발병한 터라 시력을 잃진 않았어요. 간혹 뇌경색 환자들 중 눈이 잘 안 보이거나 사시 복시 증세가 남아서 프리즘 안경으로 교정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일할 때 중간중간 자주 쉬어주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고 많이 쉬는 수밖에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6개월은 회복기고, 그것도 평균적으로 6개월일 뿐이지 회복기가 더 필요할 수도 있어요. 아직 한 달도 안 됐으니 환자 분은 당연히 아직 회복기인 거고, 당연히 증상이 있을 시기예요.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시간이 약이니 기다려봅시다.


 



 의사 선생님은 질문 내내 조급해하는 날 달랬다. 시신경이 아니고 눈 운동신경이 죽은 터라 시력을 잃진 않았다는 무서운 소리를 담담히 하시기도 했다. 나 역시도 아직 한 달도 채 안된 상태에서 언제 낫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좀 이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을 수 있는 법이 있다던지, 눈에 좋은 재활법, 운동법 이런 것들이 있진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그저 시간이 약이라는 소리에 풀이 죽어 진료실을 나왔다.


 생각이 많았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여성암병원으로 이동해 부인종양과 진료를 보러 갔다. 부인종양과 진료의 주된 내용은 '자궁내막종' 치료를 중단하자는 이야기였다. 자궁내막종은 5년 내 재발률이 40~50% 일 정도로 재발률이 굉장히 높은 질병이라 수술 이후에도 매일 호르몬제를 먹어 이를 억제해야 한다. 쉽게 말해 생리를 하면 재발하는 병이라 강제로 생리를 멈추는 호르몬제를 매일 복용 중이었다. 작년에 했던 자궁내막종 수술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다시는 수술대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 약을 맹신하고 매일 단 5분의 오차도 없이 같은 시간에 복용해왔다. 그런데 내 생명줄이라 생각했던 이 약을 끊는다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내 불신의 표정을 읽은 의사 선생님은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궁내막종 약이 뇌경색과 크게 연관 없다고는 하지만, 피를 흐르게 하는 약(뇌경색 약)과 피를 흐르지 않게 하는 약(자궁내막종 약)이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혹시 모를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끊고 더 위험한 뇌경색부터 치료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요. 자궁내막종이 재발할 수 있긴 하나...일단은 뇌경색 치료가 우선 아니겠어요? 초음파 보니 자궁선근증이 경미하게 있지만 지금 자궁 상태는 괜찮네요. 우선은 자궁내막종 약을 중단하고 뇌경색 치료부터 한 다음, 6개월 후에 초음파 상태 보고 내막종 재발 조짐이 보이면 그때 다시 치료 시작합시다."


 계속 듣다 보니 납득은 갔으나,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질병을 억제제 없이 그냥 두어야 한다니... 마치 최악과 차악 중에 최악만은 피하자는 것 같았다.(자궁과 뇌 중에 어떤 것을 잃을래? 같은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선생님은 이전 병원기록에서 비타민D 과다 결핍 내용을 찾았다며 자궁내막종 치료약 대신 6개월치 비타민D 처방을 해주셨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동생과 함께 수납을 한 뒤 약을 타러 약국으로 향했다. 이대목동병원 근처에는 약국이 여러 개 있었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약국이 안 보여서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갔다. 이때가 거의 3~4시쯤 된 상태였고, 점심도 먹지 못해 너무 배고팠던 우리 눈에 약국 건너편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다. Jackson Pizza 라고 쓰여있었는데, '저 집 간판부터 맛집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분업해 동생이 피자를 사러 가고, 나는 약을 타러 갔다.


 약국 한편에 앉아 약 제조를 기다리는 사이 뒤늦게서야 내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저 코로나에 걸려 아픈 줄로만 알았다고 한숨을 쏟아내셨다. 아무래도 엄마가 얘길 전한 것 같았다. 외할머니도 예전에 눈이 6개월 정도 잘 안 보인 적이 있었다며 6개월이 지나면 다 나을 거라고 날 위로하셨다.


 외할머니는 시골에 혼자 사시다가 최근 병원 진료 때문에 가족들이 있는 남양주 집에 올라와 계셨는데,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 주로 남동생과 시간을 보냈다.(나는 회사 쪽에서 따로 자취 중이다.) 지금은 남동생이 나랑 병원에 와 있으니 외할머니가 혼자 있다는 이야기였다. 외할머니는 충청도인 특유의 '다 티 나면서 돌려 말하기' 화법을 종종 쓰시는데, 이 날도 동생이 언제 집에 오냐고 물으셨다. 이제야 진료가 끝나서 저녁 먹고 보내려고 한다고, 왜 그러시는지 여쭤봤더니 "아녀 그냥~ 나 혼자 심심해서~"라고 하셨다. 눈치챈 내가 "동생 일찍 보낼까요??" 하니까 "아녀~ 찬찬히 와! 천천히!" 하시고는 "느이 엄마도 수업 가고~그냥 혼자라서~심심해서~"라는 말을 10번 정도 하셨다.(빨리 오라는 이야기다. 우리 할머니는 왜 이리 귀엽지.) 나는 약국에서 외할머니랑 통화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동생을 빨리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안과 진료는 내달 말이었지만, 신경과와 부인종양과 진료는 각각 5주 후, 6개월 후였기에 그간 복용해야 하는 약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투명 약봉지도 한아름 받고, 드라마에서 병을 앓는 등장인물이 심한 기침을 하다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뒤져 입안에 털어 넣을 것만 같은, 하얗고 작은 원통의 약통들도 여러 개 받았다. 약을 양손에 가득 받으니 내가 무슨 환자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환자 맞는데 여전히 부정하고 있는 나 자신. 아직도 투병일기의 '투병'이란 글자를 지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매일 먹는 나의 약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얼른 집으로 가서, 허겁지겁 피자를 먹었다. 사실 너무너무 배고파서 피자뿐만이 아니라 햄버거도 사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몸에 안 좋은 것들만 먹었네...)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그렇지, 맛은 정말 최고였다.

 

 초면이었던 잭슨 피자집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 병원에 갈 때마다 이걸 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병원에 가기 싫은 맘이 조금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가 먹은 피자는 마가리타 피자였는데, 오는 사이 다 식었어도 이렇게 맛있는 피자는 처음이었다. 오늘 눈이 어떻고 약이 어떻고 해도 또 맛있는 걸 먹으니 다 잊고 먹어지는게, 참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피자 하나로 이렇게 또 행복해지는 걸 보면 참 단순한 것 같다.


 눈은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 또 6개월의 회복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우선 실제 시력이 저하된 것은 아니라고 하니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그저 내가 그렇게 인지하는 것 뿐이라면, 언젠간 잘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니, 잭슨피자처럼 소소한 행복을 주는 것들로 일상을 채워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좋은 때가 오겠지! 이제 하도 밀려서 과거의 일을 쓰다보니 일기를 어떻게 끝마쳐야할지도 모르겠다. 몰라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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