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초로 끝나는 단어는 참 많다. 양초, 기초, 감식초, 뚜벅초(?) 등등. 근데 이 단어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탈수초'
탈수초가 대체 뭐야??? 들어본 적 있으신 분? 나참, 깜짝 카메라 아니야? 나오세요 경규 아저씨. 최근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새로 나타난 증상들이 탈수초증 같다고 해서재입원하게 되었다.뇌경색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최악이군)
이걸 다시 맞게 되다니
우선 재입원하게 된 과정을 써보도록 하겠다. 지난 투병일기 끝부분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저린 증상이 나타났다는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인 증세이기에 다음날 급히 병원으로 가 진료를 받았었는데, 증상을 들은 의사 선생님이 뇌경색이 아니라 탈수초증이의심된다고 하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뇌경색만으로도 벅찬데 탈, 탈 뭐요???' 하는 생각에 혼이 잠시 나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랑 같이 간 진료였는데, 옆을 보니 엄마도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엄마는 내 검사 기록을 본 적이 없기에 의사 선생님이 내 뇌 MRI를 다시 꺼내 보여주셨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옥순이의 모습. 혹시 찍어도 되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보고 사진을 찍었다. 내 뇌를 소개합니다~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하얀 점이 故 옥순이의 모습이다.
의사 선생님은 이 MRI만 봐서는 단순히 뇌경색인 게 명확해 보이지만, 뇌경색은 단일질환이기 때문에 후유증이 남을 수는 있어도 증상이 계속해서 새로 나타나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나타난 나의 이 소름 돋는 증상을 뇌경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증상만 봐서는 탈수초병 같으나 맞는지 아닌지 모르니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탈수초병은 흔한 병도 아니고, 뇌경색보다 훨씬 비극적인 병이라고 설명하셔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탈수초가 아니라 단순히 뇌경색으로만 판정되는 게 베스트인 상황이라고 하셨는데, 뇌경색도 정말 큰 병인데 뇌경색이기만 하면 다행인 거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맞는지 아닌지 모르니 탈수초가 뭔지 검색해보고 막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참을성 없는 나는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네이버에 검색해봤다
봐도 뭔지 모르겠다...이 와중에 뭐??? 백신 부작용??
아무튼, 그래서 입원을 해야 하는데 PCR을 하고 결과가 나와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날에나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PCR 검사만 마치고 돌아가게 되었다. 어차피 닥칠 고통이긴 하지만 입원 전에 하루라도 자유롭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진료를 마치고 나니 점심때여서 회사가 있는 상암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다. 사실 머리가 과부하되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부터 또 염치도 없이 당분간 못 나오게 될 테니 오후 업무를 하러 회사에 복귀했다. 회사 차장님을 만나 이 사실을 전하고, 또 같이 일하는 동료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두 내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셔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셨다.
그러고 업무를 하는데, 가족들과 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연락이 왔다. 어차피 다시 모든 검사를 해야 하는 거라면, 이 참에 병원을 옮기자는 말이었다. 사실 이대목동병원은 쓰러질 당시 너무 급해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간 것뿐, 내 질환에 있어서 유명한 병원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검사를 했는데도아직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점 역시 전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박차를 가했다. 엄마는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다음날 오전 10시 45분경 서울아산병원의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입원 및 검사를 할 수 있는지는 몰라서 우선 진료를 보고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오전에 아산병원 진료를 보고 빨리 병실이 나지 않으면 원래대로 이대목동에 입원하기로 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자취하고 있는 집보다 본가와 더 가까워서 퇴근 후 본가로 향했다. 그런데 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왼쪽 새끼손가락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손가락이 저리고 둔해진 것이 느껴졌다. 차에 앉아있어서 혈액순환이 안된 탓이겠지 하고 집에 도착해 쉬어봤지만, 손가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발도 같이 저려오고 몸의 왼편이 점점 더 저리게 되어 이러다 마비가 올까 무서웠던 가족들과 나는 결국 다음날 아침 진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밤 12시에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응급실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오랜만에 채혈을 하면서 '병원생활이 이런 거였지 참' 하는 생각에 빠졌다. 엑스레이, MRI를 찍는 등 응급 검사를 마치고 딱딱한 대기실 의자에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이젠 검사고 나발이고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을 무렵, 응급의학과 의사가 나와 우선 지금 검사에서는 특별한 소견이 없으니 귀가 후 내일 오전 진료를 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는 정말 응급한 환자가 오는 곳이니 만세가 안된다거나 못 걸으면 그때 오라고 했다. 몸이 마비되어갈까 봐 무서워서 온 건데... 이건 응급하지 않단 말이야? 뭐 별일 아니라면 나야 다행이지만. 너무 피곤했던 엄마와 나는 택시를 타고 귀가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아산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이대목동보다 훨씬 크고 사람들도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날의 진료 결과를 빠르게 정리하자면, '탈수초병이 의심되긴 한다. 그러나 일단응급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보여서 자세한 검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병실이 하나도 없어 입원 및 검사를 하려면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였다. 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당장 어떻게 되진 않을 모양이라 한시름 놓긴 했지만... 지금 당장 몸이 저리고 소름 돋아서 일상생활하기가 어려운데, 몇 달이나 이대로 기다리라고?? 이 병원으로 옮기려고새벽부터온 가족이 생고생을 했는데 이런 결과를 얻게 되니 힘이 쭉 빠졌다. 그래서 결국 빠른 검사를 위해 원래대로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이대목동병원도 병실이 쉽게 나지 않아서 우선 대기하라고 연락이 왔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집으로 가서 남동생과 함께 최후의 만찬으로 떡볶이와 피자를 먹고, 오후 3시 반쯤 병실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지난번처럼 8층 뇌졸중 병실에 갈 줄 알았는데, 여기밖에 병실이 없었는지 뭔지 4층 '레이디병동'이라는 곳에 입원하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이 낯선 이름이 웃겼다. 레이디 병동...?? 여성 환자들만 있는 병동인가?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표지판에 모자센터와 분만실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산모들을 위한 병동 같았다.
4층에 위치한 레이디병동
나는 다시 입원해야 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막상 병실로 올라가려니 겁이 나서 표정이 굳어있었다. 짐을 들어주러 같이 온 동생은 내 표정을 보더니 또 되도 않는 농담을 꺼내기 시작했다. 레이디병동이니 그곳에 입원하는 나도 레이디라는 것이다. 내 이름이 유솜사탕이라면 성을 빼고 이름을 붙여 "솜사탕 레이디~ 이제 갈 시간이에용~" 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시녀처럼 말했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병실로 올라가는 내내 웃어야 했다. 나 역시 "오우 노 젠틀맨~당신은 여기 올 수 없어용. 레이디들만 갈 수 있답니다." 하고 맞받아치고, 둘이 키득대다 진짜 레이디병동 앞에 도착했다.
나는조금 긴장이 풀려서 동생에게 레이디답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 뒤 레이디 병동 안으로 입성했다. 간호사 분의 안내를 받아 병실로 가니, 이전의 8층 병동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복도가 매우 넓고 휴게실 시설이 좋았다. 그리고 환자복도 하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었다. 8층 병동은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병실 내에 화장실이 딸려있었는데, 이곳은 병실 밖에 따로 위치해있었다.(근데 오히려 이게 더 편했다.)
화장실이 없어서 더 널찍해 보이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원래 6인실인 병실에 4명의 환자만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중간의 두 침대 자리는 그냥 비워둔 상태라 환자끼리의 거리가 꽤 멀어 편했다.(8층에서는 얇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자리 보호자 침대와 붙어 있어야 했던 기억이...) 그리고 화장실이 없는 대신 각각의 자리에 개별 냉장고가 딸려 있었다.(먹을거 좀 챙겨올걸...!) 창가 자리는 이미 하나도 없다고 해서 문가 바로 앞자리를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병실이 꽤 맘에 들었던 나는 잔뜩 얼어붙어있던 마음을 놓았다.
솜사탕 레이디의 병실. 서랍 아래쪽에 냉장고가 있다.
분홍색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한 보따리 싸가지고 온 짐들을 내 자리에 차곡차곡 꺼내놓았다. 그리고 이 병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바로 검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검사는 '뇌파 검사'였다. 지난번 뇌혈류 검사에서 손오공의 마음으로 고통받았었던 나는, 또 그 검사인 줄 알고 잔뜩 쫄아서 검사실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또 다른 검사였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검사용 크림(끈적끈적해서 접착이 된다.)을 바르고 빨간 색, 노란색, 초록색 등 형형색색의 전선(?)같이 생긴 전극을 붙였다. 검사 담당 선생님이 그냥 편안히 누워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원래 검사 시에 하는 안 아파요~ 같은 말은 잘 안 믿는데 왠지 진짜인 것 같아서 얌전히 누워있었다.
구글링해온 뇌파 검사 사진
머리에 저런 전극을 잔뜩 붙이고 있으려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약간...얇은 드레드락 레게 머리를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머리에 이것저것 붙이고 물속에 누워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이 자꾸만 떠오르기도 했다.
뇌파 검사를 받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있었는데, 검사 선생님이난데없이 눈을 뜨라고 하더니 눈앞에다 대고 레드카펫 카메라마냥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번쩍번쩍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눈도 시린데 계속 눈을 뜨고 있으라고 했다.(그냥 편안히 누워있으면 된다면서요ㅠ) 중간중간 한 번씩 눈을 감게 해 주었지만, 다시 뜨라고 할 때마다 불빛이 번쩍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알고 보니 이런 불빛에 반응하는 뇌파를 검사하는 거였다. 그렇게 한 20분가량 포토라인에 선 연예인 체험을 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나가려는데 검사 선생님이 거울을 좀 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하길래 한쪽에 붙은 거울을 봤더니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끈적한 크림을 발라 놓느라 떡짐+산발이 되어있었다.(집에서 다 씻고 깨끗이 빗고 왔는데..!) 형편없는 모습에 헣...하고 웃자 선생님이 "원래 이 검사가 이래요...올라가서 머리 한번 감으면 없어질 거예요."라고 설명해주셨다. 다급히 손으로라도 좀 정리하고 머리칼을 뒤로 넘겨봤지만, 해봤자 헤어왁스떡칠한 싱가포르 멀라이언 같았다. 산발 머리 사진도 찍었는데 이건 차마 못 올리겠다.
싱가폴에 있는 멀라이언(Merlion)
산발머리를 한 채로 뻔뻔하게 엑스레이까지 찍고 온 나는 병실에 올라오자마자 머리를 감았다. 아직 링거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라 나름 수월했다. 대신 드라이기가 없어서 수건으로 최대한 말린 후 전처럼 옷이 젖어 감기 걸리지 않기 위해(물론 그땐 코로나였지만) 챙겨 온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 좀 빗고 찍을걸...
병원에 오면 링거 때문에 잘 못 씻는 게 고역이었는데, 이렇게 들어온 당일에 씻고 산뜻하게 앉아있으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쉬는 시간에는 챙겨 온 책을 꺼내 읽거나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눈이 잘 안보이던 지난 입원 생활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식사도 콜레스테롤 식이 아니라 일반식이 나왔다.(그래봤자 맛없지만...) 저녁식사 후에는 병실로 심전도 검사기계가 들어와 검사를 하기도 했다. 정말 짧게 끝나서 별로 어렵지 않았다.
병실에 앉아있다 보니 다른 레이디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한 분은 보호자인 딸과 같이 들어오신 중년의 어머님이었는데, 남편 분과 정말 자주 전화통화를 하셨고, 매번 전화를 끊을 때마다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사랑해~하고 얘기하셨다. 그 통화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저렇게 사랑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아 혹시 재혼일 수도...) 또 맞은편엔 노부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아픈 할머니를 간병하는 할아버지가 정말 끊임없이 말을 걸고 다정히 간병해주고 있었다. 참 꿀 떨어지는 병실일세. 보호자 없이 있겠다고 단호히 말하고 들어왔는데 왠지 조금은 외로워져서 다시 헤드폰을 꼈다.
내일부터는 더 본격적인 검사들이 시작될 것이다. 지난 입원생활 중 날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MRI 촬영도 다시 해야 한다고 해서 벌써부터 긴장해있었다. 지난번에는 새벽에 끌려가 찍었기 때문에 혹시 내일도 그럴까 봐 오후 8시부터 벌써 잘 준비를 했다. 어제 새벽 응급실부터, 두 병원을 거치기까지 정말 긴 하루를 보내서 피곤했다.
그런데 자려고 누우니 몸이 배기고 저려서 잘 수가 없었다. 지난번 입원 때는 침대가 딱히 딱딱하단 느낌이 없었는데...똑같은 침대가 마치 돌처럼 느껴졌다. 지금 그냥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건가? 새끼손가락도 더 저린 것 같았다. 챙겨 온 담요라도 침대에 깔아 좀 더 푹신하게 만든 뒤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참내 탈수초가 대체 뭔데.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 근데 그냥 나는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아니어서 바로 집에 갈 수 있을걸? 이 모든 검사가 끝나고 나면 알게 되겠지. 집에서 마비될까 봐 두려움에 떠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입원해서 빨리 검사하는 게 나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시 돌아와 버린 입원 생활의 첫날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