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4분 33초/이서수, 은행나무
4분33초는 존 케이지가 만든 곡이다. 이 곡은 4분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다. 이 곡은 우리에게 음악과 소리와 소음의 경계가 어디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존 케이지는 4분33초 동안 실제로 아무 연주도 이뤄지지 않지만 무수한 소리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당황한 관객들의 소곤거리는 소리,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팜플릿을 넘기는 소리, 하품이나 기침 소리. 이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우리의 틀을 깨는 발상이다.
작가 이서수는 존 케이지와 이 책의 주인공 이기동의 생활을 대비시켜 소설을 풀어나가고 있다. ㅡ마침내 이기동은 당면한 삶의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 케이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기동은 애매한 인물이다. 무엇하나 뛰어난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에 진취적이지도 않고 목표가 뚜렷하지도 않다. 타인에게 주목 받지도 세상에 대한 열정이 넘치지도 않는다. 어쩌다 보니 법대생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기동은 자신의 4분33초 동안 어떤 소리를 냈고 여전히 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흔히 음악이라고, 훌륭한 연주였다고 박수 치는 그런 소리를 세상으로 내보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소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내고 있는 중이다.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동은 자신이 내는 소리를 알아달라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현실에는 많은 이기동들이 살고 있다. 자신의 소리로 세상을 바꾸지도, 세상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만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평범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하는 우리들의 일상 또한 음악이라고, 그러니 자신만의 소리를 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타인에게 박수 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꾸며낸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살아도 그 또한 음악이라고.
제목에 반했던 책이다. 내 삶의 4분33초 속에는 어떤 소리가 존재할까 자꾸만 그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는 소설이다. 그 소리가 진정으로 나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인가에 대한 고민도.
이 땅의 이기동들에게 외친다. 세상이 인정하는 그런 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당신 삶의 소리들에 주목하시라, 그리고 사랑하시라.
#독서 노트 #당신의 4분3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