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3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by 마법모자 김시인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을 때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수필을 쓰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그즈음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때도 수필 코너를 제일 많이 기웃거린 것 같다. 그래서 잘 쓴 수필을 만나면 심장이 쿵, 쿵거린다.

엄계옥 선생님께서 책을 보내 주셨다. 표지의 이력을 보니 시집을 낸 시인이며, 장편 동화책을 낸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문학 행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늘 조용하고 차분했으며 음성도, 행동도 크지 않은 분이셨다. 책 속에서 만난 엄계옥 선생님은 온화하면서도 강단 있었다. 눈빛은 형형하고 깊었다. 또 욕실에 들어온 생쥐 한 마리를 처리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따듯한 가슴을 가진 분이기도 했다.


수필은 개인적인 일상사가 많으면 식상하고 철학적 사유에 치우치면 딱딱해지고 읽는 맛이 반감된다. 문학과 철학과 삶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맛깔난 수필 한 권을 읽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세상이나 사물에, 책이나 성인에게 다가가는 눈빛이 한결같이 진지하고 올곧았다.

그가 풀어낸 가족사나 추억이 그의 이야기인 듯, 우리 이야기이며,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 읽는 이의 마음 또한 절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반항과 분노와 화해하고 용서해 가는 과정에서 말갛고 투명한 그리움만 남은 저자를 통해 읽는 사람도 정화되던 시간이었다.


시인, 동화 작가, 수필가 몇 개의 이름을 가진 문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엄계옥 선생님은 자신에게 치열했을 것이다. 책 한 권을 읽었는데 사람을 읽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진정성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가끔 내게 수필을 써 보라고 권하는 분들을 만난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괜찮은 수필 한 편을 써 보고 싶었다. 꿈틀꿈틀, 마음속에 아직 살아있는 그 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행복한 시간이었다.


#독서노트 #엄계옥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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