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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Mar 01. 2024

내가 만난 책 이야기 36

성/카프카


카프카를 만나다-『성』


『성』은 카프카의 대표작으로, 마지막 장편소설이며, 미완성작으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답답함을 느꼈다.


토지 측량사 K가 한 마을에 도착해 성과 성의 관청으로부터 자신의 직업과 개인적 삶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그러나 K는 결국 성에 이르지 못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아니 처음 투쟁을 시작한 지점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K는 ‘토지측량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인정받고자 성에 이르고자 하나, 성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성에 이르려는 K의 의도는 무산되고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더구나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외지인’ 임을 상기시키며 K에게 배타적이다. 더구나 K의 행위가 무모한 짓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제안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성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에 존재한다. 성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K뿐만이 아니다. 성과 성의 관리들은 마을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외경의 대상이며, 성의 체제와 위계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굴복의 대상이다. 때문에 마을 축제에서 성 관리의 추잡한 구애를 거절한 아말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경멸의 대상이며 배척의 대상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K가 이르고자 한, 마을 사람들에게 외경의 대상인 성의 실체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때문에 성은 종교적 해석, 실존주의적 해석, 정신분석학적 해석, 사회학적 해석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며,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결말을 묻는 막스 브로트의 질문에 카프카는 “K가 기력이 다해 죽는 것으로 계획되었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K는 죽기 직전에 성의 관리로부터 마을에 살기를 원하는 K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정황을 고려해 여기 머물며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라고 밝혔다 한다.  K의 죽음에서 ‘변신’의 그레고르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좌절되자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결말, 그의 전지적 생애와 흡사해 K가 카프카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성에 이르고자 한 K의 의지가 번번이 실패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버리는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행위를 포기하지 않았던 K, K의 답답함이 내게 전이된 것이다. K에게 성은 넘사벽의 존재였다. 그렇다면 카프카에게 그 성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프라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다수가 체코어를 사용했고, 독일어 사용자는 소소였고,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카프카는 그 극소수에 포함되었다. 그는 다수의 체코인에 속하지 못했고, 유대인인 까닭에 프라하의 소수 상층부를 형성한 독일인 특권층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문학과 글쓰기였지만, 서구 동화의 길을 걷던 유대인인의 전형이었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을 전공했으며, 아버지와 오래 갈등을 겪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K의 성처럼 넘사벽의 존재였다. 그는 또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지도 못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갔다. 두 번의 약혼을 했지만 파혼을 거듭하며,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카프카는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성’의 마을사람들은 끊임없이 K가 ‘외지인’ 임을 상기시키며, 그에게 배타적이고, 그들의 제안에 수긍할 것을 강요한다. K는 카프카의 분신인 셈이다. 가족의 멸시와 경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레고르나, 성에 이르고자 한 투쟁에서 기력을 다해 죽음에 이르는 K 역시 카프카의 분신이다.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카프카의 전기적 생애가 만들어 낸 그레고르와 K에게서 카프카가 읽힌다. 그의 무기력, 그의 좌절, 그의 절망이 느껴져, K가 카프카 같고 카프카가 K 같았다. 안쓰럽고 쓸쓸하다.


#카프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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