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41
푸는 문화 신바람의 문화/이어령
푸는 문화 신바람의 문화/이어령
이어령, 나는 그가 건넨 마지막 인사로 그를 기억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여러분들 잘 있으세요” 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유튜브 영상이 그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교수, 소설가, 시인, 희곡작가, 시나리오작가, 평론가, 잡지편집자, 문화비평가, 기호학자, 언론인, 장관, 문화행정가 등 수많은 이름으로 살았고, 어느 분야든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내고 간 분이다. 서울대학교 오세영 박사는 그는 기본적으로 시인이었고, 시인으로서의 비범한 상상력을 실현하고자 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시인으로서의 교수, 시인으로서의 소설가, 시인으로서의 시인. 시인으로서의 평론가, 시인으로서의 학자. 시인으로서의 장관, 시인으로서의 언론인, 시인으로서의 잡지편집자, 시인으로서의 문화행정가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오세영 박사의 이런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서장에서 그는 “동양은 어디에 있는가”를 반복해서 독자들을 향해 묻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며, 동양을 찾으러 서양으로 가고 있는 모순의 세계에서 풍선처럼 터지고 또 터지는 우리들의 영혼을 찾기 위해서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앞을 향하여 가겠다고 고백한다.
조선에서 근대는 일본을 통해 서구라는 외부를 발견함으로써 경험되고 시작되었다. 근대의 가치는 대부분 조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었으며, 서구의 문명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근대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신문화, 신문물에 열광하며, 우리 문화가 가진 가치들은 폄하되고 상실되었다. 이런 근대의 가치가 현대까지도 우리의 인식에 뿌리 박혀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보편주의, 식민지국의 문화를 특수주의로 설정하고, 식민국의 문화가 가진 특수성을 폄하하고 억압하며 자신들의 보편주의에 흡수시키려 했다. 일본 역시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여 우리의 문화를 진단하고 평가했다. 그런 서구인들의 인식으로 우리는 우리 문화를 진단하고 평가해 왔다.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를 새로이 보고 다시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그는 동양을 찾기 위해, 아니 그곳에 존재하는 우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이름을 달고 세상을 누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내내 상기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국수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동양을 바로 알고 바로 보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버려진 우리 문화의 씨앗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내자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생산해 내는 것을 ‘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화란 이 맺혀 있는 것, 굳어 있는 것, 빡빡한 것을 푸는 힘이다. 풀이 문화의 원동력인 신바람과 흥겨움은 생명의 근원적인 율동에서 나온다. 우리는 안다. 오늘날 문명과 긴장과 그 억압을 풀 수 있는 자가 승리자가 되리라는 것을……다만 정치가 어깨춤을 죽이고, 이 국민을 다스리려고 했기 때문에, 다만 기업가가 가락을 죽이고 고용인들을 부리려 했기 때문에, 다만 아버지가 아들을, 선생이 학생을, 남편이 아내를 신바람을 죽이고 이끌려고만 했기 때문에 이 국민은 엄청난 창조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익으로 사는 시대가 아니라 흥과 신명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오리라.
그는 우리 문화가 국가주의, 자본주의, 권위주의, 가부장주의에 의해 억눌렸던 신명을 회복해야 하며, 버려진 우리 문화의 씨앗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코드 정치코드가 아니라 문화코드로 세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내 것을 알고 가르치는 것이, 남의 것을 몰아내고 담을 쌓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문화만이 가치가 있다는 서양의 보편주의 문화와는 분명 다른 접근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말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언만이 아니라, 내 몸 역시 사랑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사랑해야 보인다. 동양도 문화도 가치도.
‘신명’ 참 아름다운 단어다. 근대의 가치에 의해 잃었던 신명을 되찾는 일,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가 참 근사하다.
#이어령
#푸는 문화 신바람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