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기림사를 찾은 적이 있다. 새해 소원은 비는 이들로 법당 안은 붐볐다. 나 역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다 저 감나무를 만났다. 각인된다는 것은 깊이 기억됨을 의미한다. 감잎마저 다 떨구고 묵은 해의 열매를 단 채 디오게네스의 후생인 양 햇살 아래 초연한, 새들의 겨울나기에 자신의 열매를 기꺼이 내어놓은 감나무의 소신공양이 어떤 경전보다 내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림사 감나무는 푸른 잎을 간직한 모습이 아닌 저 모습으로 내게 각인되었다.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허망한지, 책을 받고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사진첩을 뒤졌다. 분명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집첩에는 없었다. 그러자 그날의 방문이 1~2년 전인지 아니면 더 오래전의 일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오래전 사진을 저장해 둔 네이버MY BOX까지 뒤졌으나 사진을 찾지 못했다. 저 감나무가 보여주는 풍경에 매료된 나머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망각해 버렸나 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엔 그 풍경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