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 친정집을 갈 때, 아버지가 입원해 계셨던 병원을 지날 때면녀석은 한동안 할아버지 집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했다. 그 아이가 스물네 살이 됐으니 벌써 19년이 지났다. 녀석은 이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해 행정복지센터 갔다가 직원이 건네는 증명서를 받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곳이 공란이 되어 있었다.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이 란이 왜 비어있냐고. 이천몇 년(그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도 이전 사망자는 다 이렇게 처리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조금 울먹였던 것 같다. 그동안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 본 적이 없으니 알리가 없었다.
국가가 이제 내 아버지의 존재를,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지워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섭섭한 마음과 서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자 공란의 여백엔 그리움이 더 촘촘하게 들어찼다. 그날 나는 늦게까지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딘지도 모를 곳을 헤매며 오래 서성거렸다. 그 후 아버지를 기억할 때마다 그 공란의 여백이 먼저 떠오른다. 지울수록 더 돌올한 그리움이 그 칸을 채우고 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을까. 편한 곳에 계시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평생을 선하고 순하게 사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