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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Nov 03. 2024

한강 읽기 1

작별하지 않는다/한강/문학동네     


작별할 수 없는 사람들     

  

정동은 동사적 의미와 명사적 의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명사적 의미로서의 정동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나 강렬한 느낌으로 이해한다. 명사 형태에서도 정동은 움직임으로 강조하고 있다. 정동들은 느낌이나 욕망을 경험하는 주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정동은 느낌들의 닿음이며, 느낌들은 이러한 형태의 접촉에 의해 활성화된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정동을 생각했다. 이 책은 화자인 경하, 그리고 한때 경하와 함께했던 친구 인선, 인선의 어머니(강정심)를 통해 국가권력이 한 가족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제주4•3사건)를 보여주고 있다. 인선, 경하,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는 4•3사건이라는 비극적 역사 앞에 정동적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 4•3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화지인 경하 역시 악몽을 통해 그들과 연결되어 있고. 인선 역시 4•3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어머니와 어머니의 가족, 아버지의 서사를 통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직접적인 비극의 역사를 관통한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의 서사를 통해 그들은 더 깊은 역사적 비극에 직면하게 된다.

  화자인 경하는 제주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빈집의 새를 보살피러 눈보라를 뚫고 갔다가, 꿈을 통해 죽은 인선의 어머니와 만난다. 인선의 어머니는 4•3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몇십 년을 제주에서 대구로, 진주로, 여수로, 그리고 경산으로 당시 실종된 오빠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오빠를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강정심이 모은 자료는 2001년까지 이어진다. 그녀는 50여 년의 세월이 그 사건에 묶여 있었다. 인선의 어머니는 결국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오빠와 작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하와 인선은 어머니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4•3사건을 실체를 밝혀나간다.  

  

4•3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실체를 드러냈다. 불교의 연기법은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정동과 불교의 연기법은 인선, 경하, 인선의 어머니, 그리고 4•3사건의 피해자와 생존자만이 정동적인 존재가 아님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4•3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강정심이 아닌 2세대인 경하와 인선을 통해 이 사건을 풀어간다. 강정심이 실종자 오빠와 이별할 수 없었듯, 그들 역시 4•3사건과 이별할 수 없음을, 이별하지 않아야 함을 자각한다. 정동이 느낌들의 닿음이며 느낌들은 이러한 형태의 접촉에 의해 활성화되듯, 이 책과의 접촉을 통해 독자들 또한 정동적 존재로 4•3사건을 바라보기를 작가는 바랄 것이다. 그 힘들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진실에 다가가길 염원할 것이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진 위력을 믿는다.

 

경하는 제주에서 거대한 눈보라를 만나, 인선의 집으로 가는 길이 지체되고 지연된다. 그 사이 인선이 부탁했던 새는 목숨을 잃고 만다. 눈보라는 거대한 힘 권력의 상징이며, 새는 그 권력에 희생된 무고한 이들의 생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파닥거리는 새의 작은 심장처럼 안타깝고 안쓰러운 숨소리가 문장 곳곳에서 느껴져 아팠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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