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때문에
느닷없이, 한여름에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되었다. 아래층에서 화장실 공사를 하면서 보니, 우리 집 배관에서 물이 샌다고 했다. 물이 샐만한 곳에 실리콘 작업을 했는데 그래도 누수는 여전하다 했다. 고민 끝에 우리 집도 화장실 공사를 하기로 했다. 화장실 천장을 뜯어내고 보니 우리 집에서도 아래층과 똑같이 현상이 발견되었다. 배관이 오래되어 그 틈에서 물이 조금씩 샌다고 했다. 공사를 하시던 분이 아마 오래된 아파트들은 열어보면 다 비슷한 현상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요즘은 20평대 후반의 아파트들도 화장실을 두 개 넣는다는데 지은 지가 꽤 오랜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하나뿐이다. 난감했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이니. 수시로 공사하시는 분들이 드나들었고, 며칠을 소음과 먼지와 화장실 사용에 불편을 겪어야 했다.
아래층의 누수 때문에 시작한 공사였지만 덕분에 깨끗하고 환한 화장실을 갖게 되었다. 며칠의 불편함과 꽤 큰 금액의 돈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낡은 화장실을 고칠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는 불평이 뒤따른다. '덕분에'는 감사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때문에'와 '덕분에'는 어쩌면 실체가 없는 관념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겪는 이런저런 일상을 '때문에'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덕분에'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 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고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때문에'를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래층의 누수 덕분에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좋은 일이다." 이제 조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