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을 치르며
여직원 휴게소에서 은밀하게 접선해
할부로 책을 사고 월급날에 갚았다
행복한 채무자 시절 그 반복이 좋았다
야금야금 모은 책을 야금야금 버렸다
삼십 년 훌쩍 넘긴 마지막 동거인을
폐지장 구석에 놓자 는개비가 내렸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 시절이 웅성거려
밋밋한 이별식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십 대 찰랑거리던 시간 오래, 머뭇거렸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할부로 책을 팔고 월급날이 되면 여직원 휴게소로 할부금을 받으러 오던 단골 외판원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당시 꽤 많은 여직원들이 그렇게 책을 샀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클래식 테이프, 요리 책 등 꽤 많은 책을 샀다. 그렇게 모은 책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 책과 맞바꾸기도 하고 이사를 하면서 버리기도 했다. 올해 집 정리를 하면서 많은 책을 버렸다. 그리고 그 시절 사 모았던 책 중 30년 넘게 간직하고 있던 세계문학전집과 10여 년 논술 선생을 하면서 사 모았던 동화책들을 버렸다. 동화책은 학원을 하는 친구에게 주었지만 세계문학전집은 재활용 폐지장에 버렸다.
속이 쓰렸다. 20대 청춘의 그 설렘의 시간까지 소환되어 혼자만의 이별식은 꽤 엄숙했다. 책이 또 쌓인다. 버리기 싫은데, 집을 무한정 늘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그것이 때로 슬프다.
책이 넘치는 시대다. 할부로 책을 사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향수가 이 가을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