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종 Jan 14. 2024

괴물

세상의 모든 '비정상'에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집 근처 시사회라 응모했는데 당첨됐다. 전부터 보고 싶다고 한 친구를 데리고 갔다. 포스터에 붉은 분필로 써진 '괴물'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두 소년. 무슨 영화야? 공포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공포를 쓸 리 없는데. 상영 직전 화장실에서 본 폰이 화근이 되었다. 퀴어 영화란다. 퀴어..? 어딜 봐서...? 꽁꽁 숨겨둔 비밀을 안 듯 했다. 별 수 없지 하고 상영관에 들어갔다.


1부를 보면서: 선생님 미친 거 아냐? 애한테 돼지 뇌라니...사오리 마음 너무 이해된다. 나라도 저러겠어.

2부를 보면서: 호리쌤 불쌍하다. 잘못한 것에 비해 너무 큰 벌을 받았어..........으응? 아!

3부를 보면서: (요리 아빠와 요리 놀리는 애들 제외 모든 상황이 이해 되면서) 얘들아 행복해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론: 영화 보고 울면서 나오는 여성 됨.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괴물이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치 않다. 사오리의 시선에서 볼 땐 호리가 괴물이었고, 호리의 시선으로 볼 땐 사오리가 괴물이었는데 미나토의 시선에선 요리 빼고 모두가 괴물이었으니까. 이렇게나 짧다. 나는 생각보다 얕다.

'인간'의 다른 이름은 괴물이 아닐까. 평범하다 생각한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가닿기 전까지일 뿐이고,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은 불쑥 튀어나와 나마저 놀래킨다. 한 부분만으로 알 수 없는 존재는 사람이 제일이다.


'아쿠아'가 흐르는 모든 장면을 짚어본다. '아쿠아'가 흐르면, 정신 못 차리고 엎어지는 요리 아빠, 위태롭게 비를 맞는 교장 선생님, 태풍이 온다며 단단히 채비를 하는 신문 배급소(요리를 엄청 괴롭히는 남자아이네 가게), 아이들을 구하러 뛰어가던 사오리와 호리,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다다른 미나토와 요리. 차례대로 떠오르는데 눈물만 난다. 그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 첫 관람부터 당연히 살았겠지 싶었는데 같이 본 사람들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줘, 제발.

제목 배경으로 쓴 빅크런치 장면도 참 좋아한다. 빅 크런치가 일어나면 사람은 원숭이로 돌아가고, 나왔던 똥도 다시 들어가고 요런 대사였는데 애들 같아서 흐뭇했다. 빅 크런치는 태풍과 이어지면서 내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간다.(모두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 지도 모르겠다.)

두 소년이 폐전차에서 '괴물은 누구게' 놀이하는 장면, 미나토가 태풍 오기 전날 밤 요리를 찾아가는 장면.....그렁그렁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정상가족이 다가 아니라 여기도 여기도 다 가족이라 부를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 세상은 지났다. 피보다 물이 진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 <브로커>...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세상에 필요하다.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어 다행이다. (여기에 더해, <괴물>은 정상가족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본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괴물>만 생각하면 찌릿하다. 너희가 아른거린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거기서는 울 일도 멍들 일도 없는 거지?  모든 것이 이상한 세상이라 이상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너를,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손가락질은 필요 없다'는 문장도 쓰고 싶어 슬쩍 쓴다.)


"우리 다시 태어난 걸까?"

"그럴 일은 없어."


"나 병이 다 나았어."

"무슨 말이야. 원래 정상이었잖아."


https://www.youtube.com/watch?v=s2cdsG3g-Xk

작가의 이전글 <겨울밤 토끼 걱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