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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Jan 14. 2024

사랑은 낙엽을 타고

운명처럼 다시 밥을 먹지 않을까요

자꾸만 생각나 써야겠다. 본 지 약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라는 고전 영화가 생각나는 제목은 내 눈을 사로잡기에 적합했다. 동시에 불안했는데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주변엔 독립 영화관이 없고, 극악의 시간표가 눈에 훤했기 때문에. 찝찝한 예감은 틀린 적 없었고 나간 김에 보기로 했다.(<괴물> 무대인사 있던 날이라 무조건 나가야 했음) 보려던 영화 앞에 볼까...뒤에 볼까...씨네큐를 갈까...어딜 갈까...최종은 후에 보고 씨네큐로 가자! 였는데 최최종은 전에 보고 아트하우스 모모로 가자! 였다.(대학생 과제내는 짬바 어디 안 감)

12월 20일은 유독 추워서 저녁까지 밖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찬 공기를 아침에 맞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당신께 "그래도 일찍 맞고 일찍 들어가는 게 낫잖아요." 

영화를 기다리면서 살며시 널어둔 이불같은 리뷰들을 살펴보는데 졸았다는 평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아침이고 나는 여섯 시간 정도 자고 나왔는데 설마야....의자에 앉으니 자세도 편안하겠다 이대로 꿈나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낙엽을 타고 날아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싶었다. 잡념들이 마구마구 피어오를 때쯤, 스크린엔 '사랑은 낙엽을 타고'라는 타이틀이 나타났다.

버석버석하다. 차갑다. 어째서 나는 웃고 있지.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는 데도 쓸쓸하지 않다. 주머니 속 고구마처럼 퍼져가는 따뜻함이 나를 감돈다. 이 영화 뭐야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오가는 건조한 말(ex-동생 분 성이 뭔가요/성을 몰라요/누이인데 모르세요/마음으로 낳은 동생이에요), 근무 중에 술을 마셔 잘렸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나가는 홀라파, 식당에 취직한 지 며칠 안돼 사장이 마약 판매상이라 실직자가 된 안사, 그런 안사가 우연히 발견한 개(감독님 개라고 한다. 포스터 그 개 맞음), 두 주인공이 어색하게 떨어져 앉은 소파, 몇몇의 시간들....이 영화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품에 한아름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 '내 품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들이니까.'

퇴원한 홀라파가 안사를 다시 만나며 영화는 끝이 나는데 감독님 왜 뒷이야기를 내주지 않으십니까...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텐데 보여주지 않으십니까...이렇게 말해도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뒷장을 넘길 필요가 없는 행복이란.

두 번은 봐야 하는데 한 번 밖에 보지 못해 이 지경(?)이다. 영화를 막 보고 나왔을 때는 '잔잔하니 좋다.' 이 정도였는데 언제 마음이 커진 건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나타난다. 아릿한 마음을 어쩔 줄 모른다. 안사와 홀라파가 밥을 먹는다. 개와 산책을 간다. 시덥잖은 대화를 나눈다. 사랑이 있기에 모든 장면은 온기를 가진다. 삽입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두고 간다. 홀라파가 들른 술집에서 연주되었다.

차가운 너와 나에게서도 내내 따뜻함은 흐르는 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yVWxQnZKf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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