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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Jun 20. 2021

이시다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목소리의 형태>

2021년 43번째 영화

제목: 목소리의 형태(a silent voice: the movie)

감독: 야마다 나오코, 출연: 이리노 미유(이시다 쇼야), 하야미 사오리(니시미야 쇼코)

줄거리: 따분한 게 질색인 아이, 이시다 쇼야.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과정이라든지, 알게뭐람. 어느 날 쇼야의 따분함을 앗아갈 전학생이 나타났다. 니시미야 쇼코. 그 아이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쇼야의 짓궂은 장난에도 늘,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짜증난다. 그의 괴롭힘에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갔고, 이시다 쇼야는 외톨이가 되었다. 6년 후, 더 이상 이렇게 살아봐야 의미가 없음을 느낀 쇼야는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간다. 처음으로 전해진 두 사람의 목소리. 두 사람의 만남이 교실을, 학교를, 그리고 쇼야의 인생, 쇼코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다.


제목만 보고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예측하지 못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되었다. 나는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반성하게 됐다. 학교폭력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나는 용서를 구할 사람도 받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이시다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되돌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니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인데, 용서는 이렇게 구하는 것인데 하고.

이시다의 반에 쇼코라는 아이가 전학을 온다. 자기소개를 하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못하고, 선생님이 어깨를 건드리니 그제서야 말을 아니 글을 보여주는 니시미야. 니시미야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도, 말을 할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니시미야는 수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고,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 중심에 이시다가 있었다. 이시다는 니시미야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 가장 심하게 괴롭혔다. 니시미야의 절친이던 사하라가 널 떠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니시미야의 보청기를 빼 던지고, 하루는 갑작스레 보청기를 빼는 바람에 니시미야를 다치게 하기도 한다. 며칠이 지나고, 니시미야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 교장 선생님(?)이 니시미야의 반에 온다. 쇼코의 보청기가 5개월동안 8개나 사라졌다고. 그 순간, 담임 선생님은 이시다를 학교폭력 주동자로 지목한다. 당황한 이시다는 다른 아이들을 물고 늘어지지만, 어떤 아이도 이시다의 편을 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따돌림 때문에 니시미야는 전학을 가고, 니시미야는 그때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니시미야와 똑같은 상처를 받은 이시다는 오랜 시간 마음을 꼭 닫고 누구하고도 지내려 하지 않는다. 암울한 시절을 보내던 중, 이시다는 니시미야가 생각나고, 마음 가득 큰 짐을 안게 된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이시다는 아직 혼자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기도 힘들고, 친구를 사겨도 예전처럼 다들 떠나갈까 걱정이다. 자살을 생각하던 이시다는 자살 전 마지막 계획으로 니시미야를 찾아간다. 용기를 내어 니시미야에게 수화로 말을 하는 이시다. 쇼코는 이시다가 자신을 괴롭혀도 그저 웃을 때처럼, 지금도 괜찮다며 그저 웃는다.

이시다는 니시미야를 매일같이 찾아가 함께 붕어에게 밥을 주고,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이시다에게도 나가츠카라는 친구가 생긴다. 나가츠카의 자전거가 강탈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시다는 전처럼 상황으로부터 도망지치 않고 마주해 나가츠카를 위험으로부터 구한다. 그 뒤로 둘은 친구가 된다. 

이시다는 니시미야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니시미야가 전학가던 해의 같은 반을 했던 친구들을 모은다. 니시미야의 단짝이었던 사하라, 전에 잘 지내던 카와이와 우에노까지 모두 모아 상황을 회복하려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이시다를 우에노는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간식을 사러 가자고 이끈 매점에는 예전에 이시다를 배신한 옛 친구가 있었기 때문. 순간, 이시다는 깨닫는다. 우에노가 자신에게 한 짓을 지금 자신이 니시미야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우에노는 니시미야에게 함께 관람차에 타자고 하고,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니시미야의 여동생 유즈루는 니시미야에게 은근슬쩍 카메라를 쥐어준다.

며칠 후, 유즈루는 관람차에서의 영상을 구했다며 카메라를 들고 이시다를 찾아온다. 카메라 속 우에노와 니시미야는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싫어하니까 싫어하는 사람끼리 악수를 하자고. 나름 우에노의 사과 방식이었지만, 니시미야는 울기만 한다. 그 태도에 화가 난 우에노는 니시미야를 때린다. 자신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겼고, 니시미야가 불행해졌단 생각에 이시다는 니시미야를 되돌리기 위해 애쓴다.

하루는 마을에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니시미야 가족과 이시다는 함께 불꽃축제를 보러간다. 불꽃이 파박 터질 때, 니시미야는 갑자기 할 공부가 있다며 집으로 간다. 마침, 유즈루가 집에서 자신의 카메라를 가져다달라는 부탁을 이시다에게 하고, 이시다는 어딘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니시미야의 집으로 향한다. 불안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을까. 니시미야는 난간에 올라가 자살을 하려했고, 떨어지는 니시미야를 이시다가 온몸을 던져 잡는다. 니시미야를 구하고 떨어진 이시다는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니시미야는 이시다가 이렇게 된 것이 자신의 탓인것만 같고, 이시다가 상황을 되돌리려 했던 것처럼 이제는 니시미야가 이시다의 상황을 되돌리려 한다.

마침내 몸이 나아진 이시다는 니시미야와 재회하고, 둘은 전처럼 붕어에게 밥을 준다. 퇴원한 이시다는 학교 축제 날에 다시 등교를 한다. 반에 들어오니, 반 아이들은 모두 이시다를 쳐다본다. 두려운 이시다는 귀를 손으로 막고,눈길도 피하며 친구들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시다를 바라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제서야 귀에 댄 손을 천천히 떼는 이시다. 사람들의 얼굴에 붙은 엑스표도 우수수 떨어지고, 이시다는 비로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당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도 내가 괴롭히던 친구들의 입장이 되기 전까지 몰랐다.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옥일지 말이다. 이 영화 참 따뜻하고 괜찮은 영화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부분도 있었다. 현실에는 이렇게 정성어린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없고, 이 영화를 봤다더래도 사과를 하거나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작년 이 맘때에 늦었지만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사과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그 친구는 받아주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이 당장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때문에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늘 누가 떠날까 불안하고, 웃고 있는 아이들만 봐도 내 욕을 하는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죽어도 그 애들의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 그런데 니시미야는 이시다의 사과를 덥석 받는다. 바로 받아버리는 게 말이 될 수 있는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다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현실에는 이렇게 몇 년을 죄책감에 절어 살고, 결국에는 상처를 입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받아줄 때까지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생각을 해서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당연하지만 누구도 쉽게 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 대단해보인다. 현실에 이시다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면 덜 힘들었을텐데.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용서를 받는다고 해서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지만, 반성을 하고 용기를 냈다는 점에서 이시다가 참 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친구들 중에는 이 영화를 장애인의 관점에서 본 친구도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고정적으로 그렸달까. 생각해보니 영화 속에 나오는 니시미야는 한없이 연약한 아이고, 친구들이 괴롭혀도 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면 화를 내지 웃는 사람은 대부분 없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게 화를 내거나 불쾌감을 표현한다. 내가 만난 장애인들은 매체에서 다뤄진 것처럼 마냥 약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었고, 무언가를 시도할 때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려는 의지를 굳세게 보이셨다. 그 친구는 이 영화를 비롯해 장애인을 고정된 이미지로만 다루는 것이 안타깝다고 함께 덧붙였다.

친구의 의견과 더불어 이 영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영화든 마냥 나쁘거나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의 어느 나쁜 기억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 중간중간 울컥했다. 차라리 기억이 조작되서 있었던 일이 잘 풀렸으면 좋았을텐데. 가해자인 이시다가 마음을 열고 비로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슬프면서도 뿌듯했다. 이시다도 니시미야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다♥원작 도서가 있다던데 영화랑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궁금해지는데, 책도 구해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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