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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Jul 17. 2024

고마워요 헤드윅

기억해요 헤드윅

헤드윅, 그 사과를 내게 줄래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행위는 극악무도한 짓이다.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급이라고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난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가 안 됐어요. 나 억울해......어딜 가 진짜......

뮤지컬 <헤드윅>을 안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헤드윅>이라는 뮤지컬의 존재를 안 것.)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종종 떠올랐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공연'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한 번 관극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배우를 보러 가는 정도? 그래서 <헤드윅>도 여느 다른 공연들처럼 지나칠 뿐이었다. 그러다 dp 2에서 장성민 상병이 부른 'wig in a box' 를 듣고(해당 에피소드도 <헤드윅>과 연관이 있었다.) <헤드윅>이 궁금해졌다. 그저 노래가 좋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 날 이후로 노래를 보고, 무대 영상을 찾아보다 시들해졌을 때, 영화 <헤드윅>이 재개봉을 한단다. '<헤드윅>이 영화로도 있었구나!' 재개봉 소식을 듣고서야 나는 화면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의외로, '<헤드윅>은 나와 맞지 않는다'와 '폭력적이다' 였다. '폭력적이어서 맞지 않는 작품이다' 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보기에 과격한 부분이 분명 존재했고, 관람 연령에 어울리지 않는 수위 높은 장면들도 많았다. 이상하게도, 'origin of love' 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래, 어떤 존재를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싶어서. 이거 이거 뮤지컬을 꼭 보라는 계시인 걸? 빠른 시일 내에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닿은 건지 올해 봄, 뮤지컬로 돌아오게 되었다. (영화를 작년 12월에 봤으니 약 3개월 만이다!)

캐스팅이 뜨자마자 점찍어둔 언니가 있었는데 다 잡은 티켓팅 더 좋은 자리로 가보겠다고 이런 저런 일을 벌이다 망해버리는 바람에 반포기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못 가지면 더 아른거리는 거 뭔지 알죠....티켓 예매창이 자꾸만 눈앞에 펼쳐지고 머리는 고개를 젓는데 마음은 티켓팅 한 번만 더해보라고 외치고...비싼 티켓 가격을 본 나는 겨우 이성의 끈을 잡고 있었으나 가격이 비교적 싼 '위메프 데이'를 보자마자 무너져내렸다. (현생 파국의 시작) 날짜도 딱 생일 주간인 걸 어떻게 안 갈 수가 있어. 그런데 일정을 보니 딱 하나의 일정만 가능했고, 원하는 언니가 아니었다. 과장 조금 보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가기로 결정. 공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석촌호수도 걷고, 저녁도 챙겨 먹었다. 친구랑 통화하다 부랴부랴 샤롯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장에 입장하면서 떨리던 마음은 티켓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잠시 후, 재밌는 안내 멘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현생 재난의 시작) 

(주접 크게 시작) 화려한 머리와 옷으로 한껏 멋을 낸 언니가 입장하는데, 배우 본체가 이미 안 보여서 망함. 그만큼 배우와 헤드윅이 일체가 됐다는 것이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뜨악! 했고, 마스크가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다. 그동안 봐온 유연석은 어디 가고 내 앞엔 상처투성이 헤드윅만이 서 있었다. (언니 어디서 밝힐지 고민하다 슬쩍 밝혔다. 우리 언니. 한 번 보고 빠진 사랑스러운 언니.) '티어 미 다운'부터 객석 후끈 달아오르게 하더니 금세 분위기를 휘어잡아 자신의 서사를 이어갔다.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에게 '죽여버려'라고 뒤늦게 말하는 한셀, 엄마가 토마토를 던져도 오븐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한셀, 그러면서 노래 한 곡을 들려주겠다고 하는데 그 곡이 'origin of love' 였다. 예상치 못했는데 난 지금 휴지가 없는데...막 뒤에서 노래 부르는 동안 눈물이 철렁철렁 흘렀다. 투명 막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눈에 영상 담으랴 눈물 닦으랴 눈이 쉴 틈이 없었다. 겨우 일어나 노래하는 헤드윅을 안아주고픈 내 마음은 또 어떡할런지.....그렇게 나를 헤드윅의 사연 속에도 토미의 공연장에도 데려다놓은 헤드윅은 두 시간 삼십 분이 지나서야 다시 샤롯데에 앉혀두었다....가 아니라 앵콜을 마구 퍼부어주었다 ! 2층+극내향형 인간인데 최선을 다해 뛴 나 무엇...? 그런 체력은 어디서 나온 거죠...? 그날은 앵콜 전에 짧은 무대인사가 있었다. 연드윅이 이야기했다. "헤드윅의 클래식함을 보여주기 위해 줄마이크를 사용했어요. 동선 맞추느라 고생하는 이츠학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줄마이크 연출은 연드윅만 한다는 덧붙임에 내 머리를 쾅쾅 쳤다. 대레전 대레전. 이걸 내가 봐도 되는 거야? 준비 하나에 얼마나 감동을 받는데요....언니는 앵콜까지도 하나의 공연처럼 해주었다. 비로소 앵콜까지 해야 공연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처럼. 그날 지하철을 타고 오는 밤은 소란했다. 속닥속닥. 좋은 마음들을 나누고 싶지만 나의 온전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날 이후, 줄곧 헤드윅을 생각했다. 그는 어째서 반쪽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까. 자신에게 토마토를 던진 엄마가 들려준 신화를 그렇게나 생각한 이유는. 극의 일부가 휘발될 때마다 진정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첫 눈을 찾는 구나 싶었다.) 헤드윅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연석씨한테도 거하게 빠져 현생에 위기가 왔다. 진심이다. 한 사람이 내 모든 것에 가득 차 있던 적이 없었는데 제대로 큰 일 났지 싶었다. 안되겠다. 2차를 가야겠다.(???) 5월 중순 주말 공연으로 자둘표를 잡았다. 두 번째 공연도 언니는 그때처럼 힘이 있었고 활기가 넘쳤고 감정은 더 깊어졌다. 이 날 따라 연토미는 왜 이리 용서가 어렵고, 익스퀴짓 때 언니는 고통스럽도록 토마토를 짓누른다. 첫 번째 관극보다 집중한 탓에 지하철에 타면서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덩달아 쏟아진 졸음은 덤. 같은 칸에 헤드윅이 서 있지는 않을까. 주변 어딘가에 헤드윅이 발 맞춰 걷고 있지 않을까 싶어 뒤를 돌아 보았다. 다 챙겼다고 생각한 곳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두고 왔구나. 선덕선덕했다. 그날 따라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괜스레 그런 것들이 미워졌다. 미워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 불안한 언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안녕한 거죠? 언니가 안녕하면 모든 게 다 안녕해.

마음 다해 사랑하게 된 작품이 오늘, 한 귀퉁이를 매듭지었다. 나 막공도 못 봤는데! 연장 페어도 못 봤는데! 아직도 샤롯데에 털썩 주저 앉아있는데 혼자만 떠나가기 있냐고요...빨라도 다음 시즌에야 만날 수 있겠지 싶던 공연을 행운처럼 잡은 것도, 우연히 만나게 된 연드윅도, 반쪽 이츠학(예츠학, 여츠학)들, 지구상에서 가장 든든한 앵그리 인치 밴드도 고마웠어요:) 언니가 슬퍼할 때면 나는 왜 네가 아닐까 생각한 날이 있었어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미스테리어스한 헤드윅이겠죠. 그렇지만 같이 걸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동시에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가끔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말썽을 부리고, 때문에 미워지지만 나와 화해할 수 있는 건 나 뿐이겠죠. 화해해야 하는 것도요. 생각이 많아지는 지금부터가 정말 좋은 공연이겠죠? 다음에 올 때까지 행복할게요. 헤드윅도, 이츠학도, 앵그리 인치 밴드도 꼭 행복하세요.

연석씨! 당신의 <헤드윅>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팬이 되었겠죠? 매 공연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방방 뛰는 사람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관극에서 잡힌 멱살이 아직도 연석씨 손에 붙들려 있답니다?! 먹지 까시거나 서프라이즈로 돌아오시는 것도 너무 좋겠네요.(❤️) 저의 헤드윅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감정들을 선물 받았어요. 한 번씩 떠올리는 날엔 먹먹한 하루를 보낼게요. 진심, 진심.

응원할게요 ! 어쩔 수 없는 나의 애배 ! 수고했어요:)

유월의 어느 내리치는 여름 밤,

안녕, <헤드윅>.

안녕, 헤드윅.


https://youtu.be/YuEloqxvxBo?si=Jd4KwYAXmCL9FT7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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