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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Jul 25. 2024

<일리아드>

2024년 5번째 연극

종구 아저씨 입덕하고 처음 가는 공연 ! 그래서인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칭찬하던 수많은 댓글들을 기억해요) 공연장은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가능했다. 입장해서 자리에 착석했는데, 나레가 무대를 어슬렁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배우가 무대에 올라 있는 게 사실이었다니!) 앞 줄이라 귭나레 얼굴 너무 잘 보이고 !! 관객들이랑 노는 거 너무 잘 들리고 !! (아 그게 시카고 복화술이었군) 그러다 시간 되니까 자연스레 공연을 열어준 귭나레. (관객들이랑 놀다 공연 들어가니까 관객들이랑 노는 것까지 공연의 한 부분인 것 같고 좋았다.)


<일리아드> 는 신기하게 배우-뮤즈 어느 한 쪽이 바뀌지 않고 쭉 한 페어로 간다. 그래서 오늘은 종구나레-미미뮤즈(아코디언 연주)! 나레이터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뮤즈는 중간 중간 음악을 연주한다.

중학생 관객들이랑 티키타카할 때만 해도 나 완전 멀쩡했는데.........마스크 안으로 웃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에 다다라서는 심장이 묵직한 거에 눌린 듯 옴짝달싹 못했다. 나 이거 봐도 되는 거에요....?

신들아 뭐해.....? 너희도 편 나눠서 싸우는 거 좋아하는 거야 그런 거야....? 우리 나레 죽어......

1. 파트로클로스 살인기계: 아킬레우스 대신 아킬레우스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간 파트로클로스가 순식간에 돌아버려서 살육하는 장면인데 또라이 보는 줄 알았다(positive) 눈 뒤집혀가지고 사람 죽이는데 무서웠다. 아킬레우스 갑옷이 뭐라도 되는 양 자신감 맥스된 파트로클로스. 과유불급이다 이것아.

2. 파트로클로스 죽인 헥토르: 살인기계만큼 끔찍했던 장면. 사람을 아주 그냥 찌르고 뭉개버리던데 '괴물'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미친듯이 죽이고는 객석 바라보면서 놀랐냐고 미안하다고 손 싹싹 빌던 나레. 나약한 인간에게 무거운 운명을 쥐어준 거. 신이시여,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이 사람이 뭘 잘못했어.....눈물범벅 얼굴로 빌던 거 안쓰러워 죽겠다고.....

3. 창 맞고 죽어가는 헥토르: 목에 창 맞아 죽어봤어...?

4. 전쟁나열: 나레 입에만 조명 쏴줘서 더욱 강렬했던 씬. 겪어보지 못한 전쟁들이 나에게로 부딪혀 왔다. 도망가는 사람들, 도망가다 잡히는 사람들, 잘려나간 신체들이 쌓여갔다. 귭나레는 자신의 눈에 동전을 놓는다. 곧이어 그 동전은 떨어진다. 동전이 떨어졌다는 것은 나레가 없다는 것. 나레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전쟁이 없다는 것. "매번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해."(동전 연출 보면서, <트로이>에서 시체들 눈 위에 동전(=노잣돈) 놓아두던 게 생각났다. 시체들이 눈앞에 보이도록 선택한 거라는데 스불재가 되었군요. 나레야 죽지마...죽어...죽지마...죽어...)

5. 조명: 피가 낭자한 장면에선 붉은 조명이, 나레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봐야 하는 장면에선 눈부신 조명이 무대를 채웠다. 색부터 쏘는 위치까지 극에 빨려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구나 싶었다.(더 빨려들면 제가 죽는데요?) 조명으로 널린 소년병들 시체 표현한 거+밟지 않으려 주춤대는 나레+땡그랑 떨어지는 수십 개의 노잣돈....고통스러운데 좋은 거 뭔지 아시나요.....ㅠㅠ 울면서 눈 부릅뜨고 보고 있다....


나레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하기 싫다고 했다. 다 잘 알 거라고. 끔찍하다고. 이야기를 모두 마친 나레가 웃으며 인사하는데 왜 나는 울음이 나올 것 같냐...이야기가 정말 이야기에 불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한다. 공연장에 두고 온 나레가 자꾸 눈에 밟힌다.전쟁이 계속 되는 한, 이 이야기는 끝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나레 불쌍해서 어떡해....고기 드셔가면서 하세요 제발 밥 세 공기는 드세요....


미미뮤즈님이랑 합 짱 좋았던 귭나레(역시 고등학교 동기 짬바) 관객한테 손뽀뽀 날리다 뒤돌아 "너한테도 해줄까?^^" 묻던 귭나레와 외면하던(ㅋㅋ) 미미뮤즈. 트로이는 평화롭고, 음악가가 음악을 연주했는데 앵콜을 기다렸어요~^^ 하는 귭나레와 앵콜 준비 안했다며 고개 젓는 미미뮤즈. 귭나레가 뮤~우~즈라서 호락호락하지 않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뮤즈님 연주 덕에 극의 깊이가 더해졌다. 아코디언 연주랑 루프스테이션 번갈아 써주셨는데 루프스테이션에 나레 목소리가 들어가는 바람에 소름이 소름이.....들어본 사람만 안다. 아코디언 연주 다시 듣고 싶다. 전쟁씬에 들어간 아코디언 소리 정말 좋았는데. 음악 하니까 극 시작 전 나오던 '릴리 마를렌'(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추축군 모두에게 사랑받은 곡이라고 한다.)이 극에 쓰인 것도 인상깊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 게 왜 이리 구슬펐는지. 그런데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 웬 2차 세계대전이냐고? <일리아드>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시공간을 오가며 그 아수라장을 바라보고만 있던 모두에게 고하는 극이다. 손 들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사라지고 없을텐데, 그치?


사흘 전엔 <트로이>, 그저께는 <일리아드>, 어제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어쩌다보니 모두 '전쟁'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 전쟁 왜 해? 전쟁이 경제 발전을 가속화한다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장점 하나 없다고. 모든 게 죽어가는데 경제 발전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이다.


+) 다른 나레들이랑 다른 뮤즈들 공연도 궁금해졌다. 연기 스타일이 다르다는데, 어떻게 이 이야기를 풀어가실지 궁금하다. 

+)귭나레 왜 이리 미성.....? 내가 아저씨 노래하는 목소리 듣고 좋아진 거 맞는데 실제로 들으니 더더더 좋잖아...? 이렇게 된 거 <랭보> 명창 페어로 봐야함.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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