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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Nov 09. 2024

<킬롤로지>

2024년 8번째 연극

어느 날, 나에게 인터파크 할인 쿠폰이 솟았다.....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전부터 보고 싶었던 연극 하나를 예매했다. 바로 <킬롤로지>. 삼연이 올라온 것만 봐도 이 극을 놓지 못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다. 덕분에 티오엠도 자첫하고, 유일하게 못 본 르네였던 동하 배우도 보고 일석n조 좋지이~! 밥을 먹고 뚤레뚤레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캐슷은 수현알란, 지환데이비, 동하폴이었다.


+)'킬롤로지'란? 살해학이라는 의미. 살인을 실행 가능하게 하거나 반대로 살인을 억제시키는 요소에 관한 연구이다. 극에선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


극이 시작된 지도 모르게 빨려들게 한 수현알란의 등장은 신선했다. 아쉬운 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는 것. 장면 거듭하면서 금세 알았지만 말이다. 알란을 시작으로 세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지금껏 어떤 시절을 보내왔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입을 통해 발화한다. 알란은 아들인 데이비가 어릴 적 집을 떠났다. 이후, 아들의 소식을 듣고, 복수를 하기 위해 폴의 집에 침입한 상태이다. 데이비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다 일탈(이라 말하기에 뭐하지만 일탈이라고 말해볼게요)을 저지르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발을 디딘다. 폴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정확히는 애증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다가갔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윽박지를 뿐이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폴은 자신을 더 잘 잡아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소올찍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조금 지루한 극이라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고개를 떨궜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제가 가정법을 썼다는 건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수현알란, 지환데이비, 동하폴....셋 다 연기를 어쩜 그리 무섭게 하나요. 누구 하나 빼지 않고 칭찬해주고 싶다. 분명 나 몰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엔딩에서 무언가가 터져나올 듯한 입을 꾸욱 부여잡고 있었다. 세 인물 다 길을 잃고 불안하게 서있어서....누군가에겐 가해자, 누군가에겐 피해자, 그 이전에 사람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가해자에 이입하는 서사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폴에게 동정심이 들 때 내가 왜 이러지 싶었다. 얘 잘못한 거 맞고 뻔뻔한 거 알겠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는 내 자신이 참...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어떤 인물에도 공감할 수 없어 지루하게 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냐, 어쩌면 모두에게 공감한 덕에 피곤했을 지도 모르겠다.


자꾸 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위에서 말한 '자신을 더 잘 잡아줄 사람'은 바로 입양한 아들, 애덤이다. 처음에 폴은 애덤에게 꼼짝없이 잡혀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폴이 원하는대로 살아가지 않고, 끝에 가서는 '얼마가 들든' 그를 내 앞에서 치워버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폴이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를 이해한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확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들을 잃은 알란은 매일 매일 착실하게 살아가는 데이비를 그려내고 또 그려낸다. 알란이 집을 떠났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 지 모르겠다. 죄책감을 가졌다는 사실 하나로 그가 떠난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벌을 받은 것일까. 지켜주지 못한 존재에 원망과 사랑을 느껴야만 하는 벌. 데이비가 잘못 되지 않았어도 알란은 돌아왔을까 하는 질문도 던져본다.

데이비....위에 일탈이라고 미화했지만....그는 정말.....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저지른 일이라기에 심한 것들이 참 많다. 그렇게 사는 동안 영원히 피가 멈추지 않는 딱지도 새겨졌지만 말이다.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 달렸어요. 별을 향해.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라는 대사를 칠 때 데이비의 눈빛이 텅 비어서....참나 이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안아주고 싶다니 참나. 데이비가 메이시를 잃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자랐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자꾸만 한다. 그랬더라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비밀을 소곤소곤 말하자면 나는 쟌데이비가 궁금해서 표를 잡았다 히히 원래는 보고 싶은 배우가 따로 있었는데 프레스콜을 보고 어쩐지 이 쪽이 더 궁금해져서 말이지. 나 이 사람이 몇 살인지도 아는데 극이 시작되니 웬 반항끼 잔뜩 든 10대 청소년이 서 있네. 배우는 대단한 직업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다시 돌아와서,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 페달을 밟은 데이비는 그곳에 닿을 수 있었을까. 밤하늘 가득 뜬 별을 바라보던 폴은 그 중 어느 별을 가졌을까. 별을 잃어버린 알란은 어떻게 죽어갔을까. 생각을 잔뜩 하다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떠 있다. 유독 빛이 나는 별 하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이의 찾을 수 없 눈물방울이 아닐까.


+) 최근 본 공연 중, 음악, 조명, 무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장면 전환될 때마다 쓰인 음악들이 대체로 리듬감이 있었다.(둠칫 둠둠칫) 어떤 느낌이었냐면 범죄 영화에서 비극적인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나는 곡을 고른 느낌? (기억의 밤에서 살인 현장 보여줄 때 그랬지) 그래서인지이야기에 속도감이 붙은 것 같았다. 아, 휘파람이나 데이비가 죽어가는 영상도 음향 괜찮았고. 조명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힙'. 장면 전환될 때, 그림자가 나타나야 할 때, 심지어는 폴 책상 위에 깜빡이던 스탠드까지. 스탠드를 똑딱거리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난 잘 모르니까 궁금하네. 무대는 다 빼고 대형 칠판 소품 좋았다. 극과 관련된 물건을 매달아놓고, 해야할 말들을 써두고. 심지어, 데이비의 그림자가 맺히기도 한다. 칠판이 소형판 킬롤로지처럼 느껴졌다. 킬롤로지를 이루는 것들이 이미 킬롤로지인데 말해 뭐해. 어서 와 알란, 데이비, 폴의 이야기에 경청해주세요. 우리가 이룬 연대는 힘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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