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번째 연극
작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보고, 궁금해진 극. 내가 알기론 우리 동네에도 지방공을 온 거로 알고 있는데 보러 가려던 친구왈 "매진이었어..." 그래서 오픈되자마자 바로 잡았다. 댕로 붙박이가 5개월 만에 다시 국립극장에 오다니...달오름극장은 처음이라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내 자리는 박스석이었는데 난관 때문에 살짝 시방 있는 거 빼곤 괜찮았다.) 마음에 차오른 긴장과 기대는 자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극은 어떨까. 이해하기 어려운 대사들을 많이 한다는데 중간에 정신 나가면(?) 어떡하나 일단은 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왔으니 가라앉혀본다.
고고와 디디는 항상 같은 곳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내일 내일하며 나타나지 않는 '고도'를. 그렇다고, 그들 곁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럭키'라는 짐꾼을 데리고 다니는 '포조'가 지나가기도, '고도'가 내일 온다는 소식을 전하러 '소년'이 찾아오기도 한다. 갈라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고도를 기다리자는 말에 함께 있어주고, 발을 다쳤다는 말에 꼼꼼히 살펴보는 둘.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가 오지 않자, 이내 고고와 디디는 (돌아) 가기로 한다.
보기 전에 후기들을 찾아보면서 차가운 극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더 차갑구나...여태 본 극 중 가장 염세적인 시선이 강했어 너무 놀란 게 목이나 매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할부지들아 살아 ㅠㅠ) 다 잊어버려 누굴 만난지도 몰라 하루만에 장님이 돼... 누군지도 무엇인지도 모를 존재를 기다리는 거. 올지 안 올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거 자체로 인생과 상통한다. 우리 모두 그런 것을, 나만의 '고도'를 기다려본 적 있지 않은가. 때문에, 염세적인 시선이 담겼을지라도 끝에 가선 애정어린 시선으로 극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은 허황될 지 몰라도 쌓아둔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고고와 디디가 기다린 시간들도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어요)
캐릭터 이야기를 하자면 고고와 디디 진짜 만담 콤비 ㅋㅋㅋㅋㅋㅋ 주고받는 대화 덕에 더더욱 갈라설까 하시는데 아니요 ㅋㅋㅋㅋㅋ 두 분이 너무 잘 맞으세요 평생 같이 고도를 기다리세요(???) 포조는 익살스럽게 연기하셔서 그렇지 현실에서 보면 그저 폭력적인 인간...그런 인간 밑에서 짐꾼을 하는 럭키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것도 인생이라 봐야 하는 거라면 반항해서 벗어나는 것도 인생이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럭키 나름대로 반항할 때 속이 다 시원했다!(개비스콘 짤) 포조도 그렇게 끌려다녀봐야...(읍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소년...소년이 제일 미스테리한 캐릭터였는데 고도가 내일 온다고 알려주고 디디가 다가오면 쇽 가버림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디디 안에 있는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기대할 거 다 하게 해놓고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진다...(이래서 내가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잘 안돼) 그렇다고 희망이 됐다는 건 아니지만, 실망의 지분에 희망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말해두고 싶다.
배우들 ! 시목 배우 빼곤 다들 매체에서 뵈었었지요 무대로는 모두 자첫! 배우님들 연기 경력 무시 못한다 진심이다(매우 진심) 신구 근형 할부지 현실인지 극인지 분간도 안 가게 대사치시는 거 보고 속으로 우오오 여러번 했다. 이리 자연스러운 연기는 처음인데...덕분에 지나가는 할아버지들 얘기 듣는 느낌으로 잘 봤다 히히(욕지거리 하자고 할 때 왜케 귀여우셨지 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기껏하시는 말씀이 멍청한 놈 그런 거야 ㅋㅋㅠㅠ) 할부지들 어흑흑 꽃할배 때 제일 좋아했었어요 두 분!!! 신구 할부지는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늘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근형 할부지는 젠틀맨 그 자체라 그게 커튼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서요 신구 할부지 수줍수줍하시며 손 흔들어주시는데 근형 할부지 쾌남 스타일로 환호하며 인사해주심(사실 이 분야갑은 학철 배우님이셨어요!) 아무쪼록...오랜만에 뵈어 반가웠습니다 ! 조달환 배우 어디였도라 <닥터스>에서 악역으로 봤었는데 선한 눈매에 그런 연기를 해주셔서 무서워...워억...여기서도 신들린 듯이 연기하셔서 무서워억...포조가 생각을 해! 라고 해서 생각을 했을 뿐인데 짧은 시간 안에 그 많은 단어와 말도 안되는 문장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몸짓 하나로 시선 집중시키는 것도 대단하다 느꼈는데 어마어마한 대사를 들으니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시목 배우! 대사의 반이 "네"인데 "네"마다 다른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엉거주춤하기도 했다 확신이 없기도 했다...잘하더라고요. 장차 우리나라 공연계를 빛낼 친구예요�
원작도 읽고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도 보고 싶고 이전 공연들도 보고 싶다. 파는 것도 파는 건데 내가 어떤 시기에 있는 지에 따라 와닿는 바가 달라질 극이다. 기회가 된다면 삼십 대에, 사십 대에 볼 수 있음 좋겠다. '뭣도 없는 인생이라도 살아가야지'가 닿았다면 그때에 가선 무엇이 닿을까. 그때가 오길, 기다린다.
+) 근형 할부지 소세지~노래 하시는 거 너무 귀여우셨고 두 분이서 짐꾼 춤 따라 추는 거 사랑스러우셨어요 그런데 이런 것에서마저 애환이 느껴지면 어쩌란 걸까요...(postive)
나는 주인공도 보지만 주인공 주변 인물들에 더 눈길을 주는 편이라..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포조, 일꾼, 소년이 가진 의미를 알고 싶어졌음. (의미가 있긴 할까 어떤 의미도 담지 않는 것이 극의 지향이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