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번째 책
25년 첫 책이라니 송구스럽군다 이래뵈도 문창과인데.....나는 독서를 참 좋아하지만 텅 빈(=할 일 없고, 걱정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양심에 바늘 여러 개 박아둔 채로 윽윽거리고 있었는데 블로그 이웃 분께서 독서 편지를 제안해주셨다 ! 오왕 ! 독서도 편지도 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당 헤헤 그로 인해 읽게 된 첫 책은 <긴긴밤>. <긴긴밤>은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라 하면 '나를 살게 하는 책'을 의미합니다.) 어느 포인트에 우는지 잘 아는 터라 페이지를 넘기기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아야 진정한 어른이겠지요. (호호)
전에는 별 느낌 없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뭉클한 장면이 생겼다. 노든과 펭귄이 황량한 사막을 횡단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문단은 이렇다. '나는 항상 사막의 끝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사막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끝이 났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것들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갔다.'
세상에 한 마리 밖에 남지 않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검은 반점 박힌 알에서 태어난 펭귄은 왜 이리 인간과 닮아 있을까.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것도, 갑자기 뚝 떨어진 전쟁을 만나는 것도, 겁을 내는 것도. 당장에 보이지 않을 뿐, 길은 난다. 재난과 같은 상황에 두려워하지만, 이내 걸어나가기 때문이다. 걸어나가면서 만나는 호수와 망고 열매 색깔의 하늘, 마침내 바다. 그 무엇도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 (요즘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다. 목적지든 경로든 중간 중간 수정하면 되니까 일단 '가보자고'의 태도)
아참! 일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따수운 이야기에 따수운 그림' 붉은 계열에 파스텔톤을 풀어서 일러스트를 모르는 이(=나)가 봐도 따수운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게 했다. 신기한 건, 그 따수운 일러스트에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치쿠가 죽을 때, 바다에 도착한 펭귄 한 마리가 뒤를 돌아볼 때(이 일러스트는 앞 내용과 이어집니다. 수많은 펭귄들 사이에서도 노든은 알아보겠지요. 자신과 함께 긴긴밤을 건너온 펭귄을요.) 눈물을 흘렸다. 치쿠가 죽을 때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니...(처음 읽을 땐 숨 찰 만큼 울었는데 요번엔 그냥 눈물만 흘렸습니다. 많이 나아진 거겠지?)
어렸을 적엔, 음악 프로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부르는 '사랑'이 다인 줄 알았다. 내가 널 좋아하고, 좋아서 잠 못 자고 고백하고 고백 받아주고.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는데, 아니었다. 사랑은 생각보다 작고,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난생 처음 접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이를 위해 등을 내어주기도 하며, 나란히 걸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긴긴밤을 함께 나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슬픔을 읽는 것일 지도 모른다. <긴긴밤>을 한 번 더 읽으며 사랑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세계에 다른 세계가 자꾸만 끼어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 등 없이는 디디기 어려운 처음을, 나란히 걸어도 어둑한 긴긴밤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슬픔을 말이다.
(p.s 그대들 덕에 조금은 알 수 있었어요. 긴긴밤도 날 수 있었고요. 오늘은 고맙다는 말보다 긴긴밤을 함께 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