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시가 없어진 후.

내 육체에 있는 모든 점의 위치를 알 순 없듯이.

by 민태선

모든 가시가 없어진 뒤.

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몸에 박힌 가시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난 홀가분해 지기만을 기대한다.

가시로 뒤덮여 있었을 적.


날 적대시한 사람들 에겐 더 이상 적이 아님을

날 가까이했던 사람들에겐 더 가까이.

그렇게 만들어질 것만 같은 예상.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가장 간단한 것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시에 가려졌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이처럼 밝은 햇빛이 나를 쬐고 있었던가.

가시가 사라진 뒤 드넓게 트인 시야.


수없이 많은 것들 사이에 내가 존재했었나.

선한 이들의 따뜻한 미소들이 되려.

연약해진 피부들을 서서히 태워가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았던 것일까.


새로운 것을 마주 하기에 정신과 육체는 정돈되어

있지 않았던 것일까.


그제야 조급했던 것은 마음이었던 것이란 걸 빼닮았다.

한걸음 물러나 내 상태를 바라본다.

멋진 선배들에게 배웠던 방식대로.


박혀 있던 화살들은 가시가 되어 떨어져 나갔다.

그 때문에 되려 무게감각이 익숙지가 않다.

그동안 가시들의 에 무게 뒤덮여 안정적으로 걸었다.


어차피 그랬던 사람이다.

이런 눈총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살아감에 있어 여태 한 번도 특별한 적 없다.


그 암울함에 몸이 잠겨 푹 젖은 털북숭이 생명체처럼.

한걸음 한걸음 방황하고 있었다.


그것들에 둘러 쌓여 익숙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괴리감에 몸서리 쳐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야 하나.


다시 몸에 가시를 박아 넣어야 하나.

불편함을 이겨낼 자신감을 갖추지 못했다.

나조차 불편했던 나일터인데.


타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내 모습에.

자신의 노력이 닿았음에.


미소를 지었을 수도.

익숙했던 자의 달라진 모습에

불편함을 감내했었을 수도 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갑작스럽게 달라진 무언가는

안도감의 배척 대상.


그렇다고 원래 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꾀를 내어 보자.

그들이 불안하지 않게.

달라진 시간선이 흘러감을

느낄 수 없게 끔.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진실이라 생각하는 동물.

그렇다면 잔꾀를 내어 보자.


가시를 박아 넣은 껍질을 입고 그들에게 나타나자.

그들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껍질 안에서

새살을 돋우고, 단단한 살을 채워나가자.

그들의 사이에서 미소 지으며 더 나아가자.


마침내 나는 배려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배려라는 껍질을 몸을 위탁한 후.

그들에게 다가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연약해 보였던 생채기들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어떤 이는 껍질이 비늘처럼 촘촘했다.

어떤 이는 사포처럼 거칠었다.

어떤 이는 닿으면 매우 뜨거웠다.

어떤 이는 매우 차가웠다.


아무런 무기 없는 그들일 줄로만 알았더니만.


실은 그들 또한 남몰래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만의 무기를 말이다.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았던

내시선이 만든 착오는 나만을 연약하게 만들었을 뿐.


그들 또한 연약한 존재 임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마음속에 짐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시가 주는 무게를 잊어서일까?

아니다.


그들 또한 가시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다만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나서는

마음 한구석에 새로운 감정이 자라난다.


호기심.


특별한 효엄이 있는 균사체 일지도.

치명적인 위험을 가진 균사체 일지도.

직접 섭취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버섯.


그것이 마음의 가장 깊숙한 속에서 자라난다.

생각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욕망은

그들의 입에서 답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린다.


마음속에서 정해진 문제의 답이 정답이길 바라는 것은.

오만의 형태일지 추산한 감정의 예산이 맞아떨어짐을.

그렇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결국 자그마한 보상 심리뿐.


가까워진 그들 사이에서.

또다시 실수를 저질렀다.

나와 타인을 나눈다는 크나큰 오판을.


질문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어느 땐 쉬울 수도 어느 땐 어려울 수 있다.


마음속의 답을 이미 정해져 내려 버렸다면.

난 또다시 어둠 속에서 가시 박혀 숨죽이리.


타인을 향해 정답을 입 밖으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

어떤 질문인지 알 수 없다면 정확한 답을 낼 수 없다.


자신의 육체에 새겨져 있는 점의

모든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답은 내리지 않은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이렇게 또다시 답을 찾아 내고야 말았다.


답이 없는 문제.

문제가 없는 답.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자 공식을.

작가의 이전글세상의 3분의 2는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