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비즘. 소비되는 지적 허영심.
처음 두바이 초콜렛을 맞이 했을땐,
심상치 않는 가격과 맛 때문에 흠칫 놀랐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질척함과 바삭함이 공존하는 초콜렛이라니.
그리고 그에 걸맞는 충격적으로 고급 적인 가격.
세상이 멋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낄만한 충분한 사치품으로 느껴졌다.
처음 시도를 했을때만 해도 새로운 문화를
맞이 한 것처럼 마음속으로 만족감 차오른다.
타인과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은 보증 수표이자,
세상과 아직 멀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만원 남짓한 금액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뒤에 새로운 대항마가 나타난다.
두바이 쫀득 쿠키.
이른 바 두쫀쿠 라는 음식의 출범.
이는 두바이 초콜릿과 매우 유사하다.
마쉬멜로우와 그 안에 든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안의 카타이프는 충분히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만큼 더욱이 비싸진 금액은 첫작을 아주 잘 이어낸 후속작이 었다.
하지만 난 두쫀쿠는 불편했다.
새로운 문화라기엔 창작이 아니어서 일까.
초코파이의 부드러운 부분이자,
지방과 설탕의 감미로운 조화로 마쉬멜로우를 내세웟지만,
늙어버린 몸을 가진 나로썬 너무 달달해 머리가 어지러웟다.
안의 것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
모래주머니를 씹는 것 같이 느껴진다.
너무 과했던 것일까.
툴툴 대는 노인이 되어버린것일까.
고작 40도 안되었는데도.
그런 경험을 얻고 나서 주변의 말소리가 귀에 들려 온다.
두쫀쿠는 열풍이 되었고, 먹지 않은 사람과 먹은 사람 두 부류로 나뉘어 버렸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되는 디저트.
그만큼의 값어치는 없는 디저트.
두 개의 두쫀쿠 평판론자들은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불평과 찬가를 내뱉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난, 한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스노비즘.
정확한 주체는 관심이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려는 외견만 가져오는 일명 허영심.
그것을 일컷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허세.
놀랍게도 모든 인간은 허세에 적응 되어 있고 그것을 놀랍도록 좋아 한다.
고가의 커피 체인점.
명품로고가 박힌 티셔츠
새로운 신식 핸드폰 까지.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존재임에도,
비싼 값을 치루며 자신을 만족시킨다.
타인들에겐, 자신을 완성시키는 물건이 라는
식으로 쿠션어를 사용하지만.
대체로는 사치임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줄어가는 자신의 통장 잔고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며 일반적을 만들어 낸다.
한번도 사치를 부리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만들어지고,
일반적으로 살아갔음에도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손가락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있다.
왜일까?
난 이 재밌는 허영심 덩어리가 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재미들을 정리 했다.
노력하지 않고 얻어낸 물건이라 이득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열심히 노력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어낸 타인을 바라보며
난 그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라는 식의 자기 위로 일까?
현실의 다른 타인들은 낡고 꼬질꼬질한 옷들로 자신을 치장하는데 있으니
그것들과 나는 차별점을 두려 화려한 앰블럼과 휘장들로 장식해 라이벌들을
제거 하려드는 마치 날지도 못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날개털들을 만들어 내는 공작새 같은 의도 일까?
필요의 영역이 아닌.
자유의 영역으로 넘어간.
인간이 아닌 또다른 사회적 동물의 진화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그들은 경제와 사회적으로 진화한 동물들이며
그들만의 자유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을 굳이 나같은 필요의 영역에 남아 있는 도태된 생명체가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난 나대로.
넌 너대로.
다른 생명체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가할 필요는 없으니까.
물속에 사는 물고기에게 그곳은 춥고 어두우니 나오라며 물밖으로 꺼내버린다면.
물고기는 살아 갈수 없을테니 말이다.
서로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단 것을 알아 차린 나는 마음이 한켠 편안해진다.
나의 영역 안에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안과 밖의 영역이 모호한 동물원.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새.
추리한 옷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관광객.
그들이 나를 지켜보지 않는 이상.
우린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화려한 무늬와 영역싸움 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며 박수를 치자.
직원의 말대로 먹을 것을 던지지 않은 채로 안전한 거리를 둔채로 그들을 감상하자.
공작새 에게 잘보이려 화려한 옷을 입는 관관객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