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었던,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뽑힌 가시가 수북이 발밑에 쌓였다.
움푹 들어간 상처로 안쪽이 보인다.
검은 상처 자국은 어둡고 피가 응어리져
있고 곯은 흔적들도 여럿 보인다.
괴롭혔던 것들을 바라보니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붉은 것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한들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담담히 구멍들을 쓸어내고
남은 가시들을 털어내자.
잊을 것들을 추억하지 말자.
괜히 남겨두어서 무엇하랴.
그들이 던진 것 들을
담아낸 내 잘못이다.
의미 없이 던진 걸
의미 있게 받아낸
내 잘못이다.
던진 것에 뜻을 두지 말고
던지지 않은 것에 뜻을 두자.
남겨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이니.
뜯어낸 가시들을 그대로
둘 수 없기에 주워 들어 들여다본다.
무엇이 날 그렇게 아프게 했던가.
외모와 추한 몸매에 대한 비평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않는 이유.
행동들과 남을 대하는 대처방식.
가시들을 하나둘씩 보다
보니 입가엔 미소가 지어진다.
괴롭혔던 것들이 겨우 이런 것들.
헛웃음이 나온다.
하나하나 자신의 입맛에
맞춰서 나온 것들이었고,
그것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었다.
일반적인 평가가 아닌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들.
저울의 눈금이 기분에 따라 달라지면
그것은 옳은 저울일까.
고작 이 딴것들 때문에
아파했던 내가 바보 같다.
타인의 눈치 때문에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들.
그리고 그 바보들이 쏘아낸
화살을 받아낸 나 자신.
두 바보들의 싸움이었다니.
다른 점이 있다면,
알아차렸다는 점뿐.
그들은 평생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살았으니.
하지만 우리는 후회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안식처가 있다,
그리고 되돌아볼 기회 또한 있다.
평생을 자신의 우물 안에서
썩어가며 공간 들어오는 것들을 향해
불평불만만 하다 그렇게
관조차 작다며 불평할 것이 뻔하다.
딱딱한 신발 속에 담긴 조그마한
조약돌 같은 것들을 버리자.
그리고 이젠 단단해지는 방법을 찾자.
생각하며 떠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단단한 방벽을 쌓아
갑옷처럼 두르는 것.
어떤 것이든 튕겨낼 정도로
유연하고 탄력적인 것.
그것들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그저 평범한
무너진 인간이다.
산을 바라본다 한들
한걸음에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자.
한 번에 두터운 갑옷을 만들 순 없다.
한 겹 씩
한 겹 씩
나 자신을 쌓아가자.
안쪽부터 촘촘히 빈 공간이 없게
꾸준히 쌓아가자.
그렇게만 된다면
총알이 날아온다 한들.
촘촘히 쌓아 올린 방탄유리에
막혀 튕겨져 나올 테니까.
마음한구석에 또다시
그 녀석이 차오른다.
“아무렇지 않아 하면... 계속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가차
없이 거부당한다.
그들은 반응의 동물이다.
포식성 설치류쯤 될 그
녀석들은 반응하면 흥미로워한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 졌다. 쌓는다.
무엇이 좋을까, 어떤 것부터 쌓아 볼까.
책도 좋고 글도 좋다.
철학도 좋고 인문학도 좋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게.
흥미롭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지루하고 현학적인 그것들은
명약이지만 너무 쓰다.
그렇다면 가장 흥미로운 부분부터 쌓아 보자.
그렇게 내가 정한 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책처럼 종류가 매우 많다.
어떤 사람은 만화처럼 재밌고
어떤 사람은 금서처럼 아슬아슬하고.
어떤 사람은 소설처럼 흥미롭고
어떤 사람은 낙서장처럼 어지럽다.
한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
인간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사람은 한 발자국 가까이.
언젠가 또다시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르지만.
날아올 궤적과 종류를 안다면
피할 수도 있고 덜 아플지도 모르니까.
나아가, 해하려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면
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