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자신을 위탁하는 삶.

어쩔 수 없이 위태로운 절벽에 매달린 아기 요람.

by 민태선

사람은 절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자신을 위탁한다.


부모라는 존재에게 태어나지고 길러지며.

선생님이라는 존재에게 교육을 받는다.


친구라는 존재에게 어울림을 배우며

타인이라는 존재에게 중도를 배운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경우는 대체로 없다.

잘못된 사상을 가지거나, 교육을 받는 이상 말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분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말을 해도 허용된다면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되어 가고 있다 생각한다.


항해를 하는 나룻배가 한 번도 암초와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항해 라고 할 수 있을까.

바다 없는 항해는 의미가 없다.


배움이 없다.


우린 세상을 항해하며 많은 것 들을 배운다.

무리가 아닐 때 받을 수 있는 공격들은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에게 주는 체벌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무리 안에서 숨 쉬며 자신을 돌봐야 한다.

다만, 이타적인 존재들이 있다.


자신을 타인에게 맞기는 것이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나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었으면 하고.


내가 실수를 하면 옳은 길로 인도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목에 그의 이름표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길 바란다.

입으로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돈이라는 족쇄에 묶여 회사에 자신을 의탁하는 존재들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은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자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 은 끝없이 성찰하는 자신의 신념과 당신을 사랑하는 부모님뿐이다.

절대 사회는 타인을 거두지 않는다.


당신을 소화가능한 인간이라고 판단하고 간단한 일거리는 나눠줄 뿐이다.

지금 있는 일을 감사해하며 받아 들자.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다.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의 두근거림과 자신을 받아 준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입사를 하고 첫 월급을 받자마자 사라진다.


대게 저장 하는 급여가 생길수록 이런 배부른 행동들이 나타난다.


자신이 얼마나 초라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일을 주는 회사의 욕을 하고 타인에게 지금

이곳이 얼마나 초라한 곳인지 구태어 확대 해석하게 만든다.


자신의 아래에 새로운 사람이 뽑혀 나타나면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초라한 곳인지를 보인다.


그것들은 대게, 불평과 불만을 해소하는 변기 신세로 만들고

또한 필요하다면 가스라이팅도 더러 하더라.


그런 초라한 인간을 바라보면 가끔씩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자신의 입으로 회사의 욕을 한다는 건, 자신또한 그 욕의 대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막대 하는 인간들은 자신은

권위와 속세에 찌들어 버린 피해자이며 너희들은 가해자다라는 식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는 걸로 보아.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아랫사람들이 당신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이 철창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락한 절벽에 아슬하게 매달린 것을 당연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절벽에 매달린 당신은 누군가가 구해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게 그런 사람들은 늘그막에 깨닮고 얼마나 다행인지 그제야 이해하더라.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며,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한들.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되돌리고 싶을 그땐 이미 늦어 버린다.


절벽의 요람은 새로운 요람으로 대체되며 쓸모가 사라진 요람은 끝없이 추락한다.

추락하는 요인들은 대게 자존심과 행정 처분 두 가지로 나뉜다.


그때 가서, 생각한다.


그러지 말걸.

그러지 말걸.


후회는 이미 늦었다.


추락하는 당신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아랫사람들을 생각하며.

끝없는 지옥 속에서 고통 없는 죽음을 바라며 영면에 드는 수밖에 없다.

우린 이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린 계속해서 값어치가 줄어드는 재화다.

이 값어치가 더 이상 줄어들기 전에.

나의 시간을 들여, 다른 타인에게 소비되어야 한다.


좋은 선배.

좋은 인간.

좋은 사람.


내 값어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수많은 절벽에 매달린 요람들.

그것을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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