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뽑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by 민태선

“괜찮아, 아무 일 없어.”

항상 했던 다짐은 무너져 내려 버렸다.


놀랍게도 뜻밖의 장소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 역의 앞.


항상 거닐고 다녔던 역밖의 출구 앞에서

무너져내려 버리고 말았다.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번번한 직장은 없이 언제나 꿈을 말하면

가차 없이 비웃는 그런 곳들.


꿈을 말하면 가차 없이

비웃던 세상을 닮아갔다.


나조차 나를 비웃게 된 어느 추운 날,

예고도 없이 우울증이라는

끈질긴 끄나풀이 내 삶을 휘감았다.

마음 한편엔 이유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현대 사회의 톱니바퀴들은 언제나

우울증을 기름칠 삼아 움직이지 않던가.


“나도 어른이 된 거구나.”


의사의 경고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너져 내려 버린 나는

일상의 고리를 끊어내며 모든 것을 미뤄냈다.


생업마저 미뤄둔 채 멀리서 내가 정작 원한 것이 무엇일까

떠올려야만 했다.


뽀얀 화장실의 거울로 내가 보인다.

관리되지 않은 몸과 덥수룩한 수염과

내 몸에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는 점.


그것들을 보다 문득 난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거울을 보듯이.

한걸음 뒤에서.

나체의 육체를 말없이.


목도한다.


보이지 않던 몸의

상처들이 들여다 보인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돌멩이들로 인해 난 멍들.


아무렇지 않게 썩은 입술로 튕겨낸 화살들이

내 몸을 가시 돋친 선인장처럼 만들었다.


다가오는 사람들은 날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태생적으로 가시가 돋친 선인장.


가까이 가면 안 되는 위험한 인간쯤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시를 뽑아낼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쩌지?”


도리어 화살들 덕분에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내 방어 기제이자

그들의 저지른 일에 대가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가시들은 사회의 더러운 인간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만 제일 고통받고 있었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가시가 돋쳐

있음에도 나에게 다가온다.


내 날카로운 가시들에 상처가

생기고 피가 맺혀 흐름에도.


그들은 그런 날 포용하며

더 내 안으로 다가오려 노력했다.


뻥 뚫린 친구와 가족들의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정작 더러운 인간들에겐

피해야 할 장애물쯤이었다만.


가까운 사람들에겐 감내해야 할 짐이

되어있었을 뿐이었다.


보호하려는 가시들이 한 짓을

보고나선 생각을 굳혔다.


그것들을 최대한 뽑아내고 잘라내자.

물론 고통과 걱정도 들것이다.


당했던 그런 수모들은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걸까.

가시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날 괴롭힐 텐데.


그런 것들은 모두 덜어내도 좋다.

정작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그런 것뿐이란 사실에 가슴 깊숙이 통증이 느껴진다.


화살이 박혀 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이젠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잘라내고 뽑아내자.


날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사람들을 위해.

사랑이라는 유약을 바르고 나아질 때다.


행복이라는 껍질을 만들어내자.

자존감이라는 갑옷을 만들자.


언젠가 또다시 나에게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올 때면.

또다시 울음이 올라올 때면.


그땐 행복해서 우는 울음이 되자.

날 위한 작은 것들을 위하여.


내 모든 것들을 위하여 또다시 살아내자.


오늘은 잠시 멈춰서 쉴 시간이 필요했을 뿐.

나에게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단단해져 가는 날들이 찾아오길 바라며.


문득, 방금 껍질을 벗어던진 홑게가

되어버릴 날들이 찾아올 때면.


이 장소가 안전함을 가진 숨을 수 있는 은신처가 되길 바라며.


더욱 단단해진 갑피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

뒤돌아 봐도 언제나 그곳에 있을 안식처.


치열하게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유일한 공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고향 같은 공간.

가시를 벗고 단단해지길 바라는 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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