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그리고 도전.

도전. 그리고 실패.

by 민태선


어릴 적 나는 자전거를 배우면서 수십 번 넘어졌다.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에 자갈이 박혔지만,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시 타봐"라는 말 한마디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수십 번의 넘어짐이 자전거를 타게 해준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타게 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실패를 마치 극복해야 할 적으로 여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실패 앞에 서면 고개를 숙인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꺼내고자 한다.

실패한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실패하는 것이다.


이 말은 냉소가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관찰에서 비롯된 말이다.


세상에는 실패를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문화가 생겨났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빠른 실패(fail fast)"를 미덕으로 삼고, 자기계발서는 앞다퉈 실패의 교훈을 설파한다.


일론 머스크가 로켓을 폭발시킬 때마다 박수를 치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신화처럼 전한다.


이 이야기들의 결말은 언제나 찬란한 성공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역순으로 쓰인다.

성공한 자의 입으로 실패가 재구성될 때, 실패는 이미 의미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실패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를 잘한다는 것은, 그들이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실패를 반복한다는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뜻이다.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세 번 떨어진 사람은, 처음부터 응시하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이 실패했다.


하지만 그 세 번의 실패는 세 번의 시도이기도 하다.

실패의 총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반경이 넓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한발 더 나아가고 싶다.

실패가 단순히 시도의 부산물이라는 이야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를 잘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실패의 문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뜻이다.


실패에는 고유한 냄새가 있다.

어떤 순간에 힘이 빠지는지,

어떤 말에 무릎이 꺾이는지,

어떤 상황에서 포기가 합리화되는지를 그들은 몸으로 안다.


처음 실패를 맞닥뜨린 사람은 당황하지만,

여러 번 실패한 사람은 그 과정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내성이다. 독을 조금씩 먹다 보면 독에 강해지듯,

실패를 반복한 사람은 실패가 주는 공포에 무뎌진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를 이야기했다.

신들의 형벌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닿으면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오는 것을 반복하는 인간.


카뮈는 말한다.


"시지프는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인간의 태도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여기에 다른 층위를 덧붙이고 싶다.


시지프가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그가 바위를 굴리는 데 누구보다 능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각도로 밀어야 덜 미끄러지는지,

어느 순간 쉬어야 체력이 남는지,

어떤 리듬으로 걸어야 덜 지치는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실패의 반복은 그를 마모시켰지만, 동시에 그를 전문가로 만들었다.


이쯤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실패에 능숙해진다는 것이 과연 위로가 되는가.

실패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결국 칭찬인가, 조롱인가.


나는 그 경계에 서 있는 이 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경외를 보내지만,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동정을 보낸다.


그런데 사실 실패한 사람들은 동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가진 기술, 즉 실패를 다루는 능력에 대한 재정의다.


어떤 치료사는 말했다.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만이 진짜 상처를 안다고.


암을 겪은 사람이 암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혼을 겪은 사람이 이혼의 고통을 가장 잘 안다.


실패한 사람은 실패의 내부를 안다.

그것은 이력서에 적을 수 없는 능력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종류의 것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를 잘한다는 것은,

그들이 삶의 어두운 방을 혼자 헤쳐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 방에서 그들은 벽이 어디 있는지, 문이 어느 쪽인지, 어디서 발을 헛디디는지를 알게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불을 켜고 걷는다면, 실패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걸을 수 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었다.

넘어지고도 다시 올라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실패를 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넘어짐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다시 출발선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고, 가장 오래 살아남는 방식이다.

실패한 사람들은 그 기술을 가장 많이 연습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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