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없는 것이 어떻게 물질에 기생하여 가짜 자아를 만드는가.
허무의 만찬: 당신의 배설되지 못한 허영에 관하여
당신은 지금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심 한복판, 간판조차 없는 육중한 철문 앞에 서 있다.
이곳은 한 끼 식사에 누군가의 일주일치 노동 가치가 녹아 있는 소위 '파인다이닝'이라 불리는 공간이다.
입구에서 안내인은 정중하지만 서늘한 태도로 당신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는 스마트폰을 수거함에 맡기는 것, 둘째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촬영도, 기록도, 자랑도 허용되지 않는 고립된 식사. 당신은 그 기괴한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부는 압도적으로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트장처럼 공허하다.
테이블 사이의 간격은 지나치게 넓어 타인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조명은 오직 당신의 접시 위만을 정교하게 비춘다.
당신은 이곳을 '미식의 정점'이라 칭송하겠지만, 사실 당신이 진정으로 탐닉하는 것은 혀끝의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이곳에 올 자격이 있다'는 선민의식과 '너희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나는 누리고 있다'는 우월감의 혼합물일 뿐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당신은 접시가 놓이기 무섭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찰나의 이미지를 가공하여 가상 세계에 박제하고, 타인의 부러움을 먹고 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 모든 배설 통로가 막혀 있다. 50만 원이라는 거금은 오로지 당신의 위장 속으로만 사라질 운명이다.
식사가 시작되면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평소라면 "인생 최고의 맛"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당신은 소리 없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경험을 공유할 동행도 없고, 증명할 사진도 남길 수 없는 상황에서 식사는 즐거움이 아닌 '형벌'에 가까워진다.
당신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이 사라지자, 당신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명품 옷을 걸치고 고가의 술을 들이켜도, 그것을 알아봐 줄 관객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무거운 천 조각과 쓴 액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 '특별함'에 대한 갈망은,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비참하게 꿈틀거린다. 당신은 동등함을 바라며 이곳에 왔지만, 사실은 타인을 발밑에 두는 비열한 쾌락을 원했던 것이 아닌가.
당신의 머릿속은 이미 어디선가 배운 온갖 수식어들로 점철되어 있다.
섬세한 산미, 예술적인 플레이팅.
하지만 이 모든 언어는 당신의 진심이 아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가치, 세상이 우러러보는 기준을 복제하여 제 것인 양 떠드는 허영의 데이터 뭉치였을 뿐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 당신은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이 화려한 식탁 아래 숨겨진 본질은 결국 자신 없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의 가치를 내면에서 길어 올리지 못하는 당신은 외부의 비싼 껍데기를 빌려와 성벽을 쌓는다.
그 성벽은 견고해 보이지만, 관람객이 사라지는 순간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촬영이 금지된 식탁에서 당신이 느낀 공포는, 자신의 알맹이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데서 오는 실존적 공포다.
레스토랑을 나서는 길,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찌를 때 당신의 손에는 아무런 사진도, SNS에 올릴 한 줄의 문장도 남지 않는다.
누군가 오늘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
그 순간, 비로소 당신은 이 식사의 진정한 무게를 느끼게 된다. 타인에게 배설되지 못한 경험은 오롯이 당신 안에서 소화되어 피와 살이 되어야만 한다.
택시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다, 당신은 무심코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화면 속에는 타인의 만찬들이 넘쳐흐른다.
알록달록한 접시 사진들, 별점 다섯 개짜리 감탄사들, 누군가의 행복한 저녁.
당신은 오늘의 식사를 그 어디에도 올리지 못한 채 조용히 화면을 꺼버린다.
침대에 누워 부푼 배를 쓰다듬을 때, 당신은 기묘한 허무를 느낄 것이다.
자랑하지 못한 포만감은 당신에게 고통이다.
타인의 부러움을 사지 못한 소비는 당신에게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허영으로부터 격리된 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잠을 청해야 하는 이 밤.
당신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마주하기 싫었던 정직하고 비루한 당신의 실재(實在)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이라는 존재의 날것 그대로의 진실이다.
경험이라는 포장지로 아무리 곱게 감싸도, 타인의 시선 없이는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어떤 만찬도 구원이 될 수 없다.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허기가 아니다. 관객 없이 홀로 존재해야 하는, 그 고요하고 정직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