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말은 쓸모가 없어졌다.

자신이 경험 한 것들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by 민태선

더 이상 노인들의 인내에 대한 조언은 쓸모가 없어졌다


버텨라. 참아라. 때가 되면 알아준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온 말들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말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공장에 취직하면 평생 직장이 보장되고,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올랐으며,

과장 명함이 부장 명함으로 바뀌는 동안 삶도 함께 나아지던 시절.


그 시절의 인내는 실제로 보상받았다.

그러니 그들의 조언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그 조언이 유효하던 세계가 사라졌다.


문제는 조언은 남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회의실 어딘가에서, 밥자리 어딘가에서, 그 말들이 흘러나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포기해.

나 때는 그런 거 따지지 않았어.

이 악물고 버티면 길이 생겨.

말하는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았고, 그 방식으로 무언가를 이루었다.


하지만 진심 어린 조언도 틀린 지도를 건네면 길을 잃게 만든다.

지도가 잘못된 것이지, 걷는 사람이 약한 것이 아닌데도.


지금 시대의 직장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이렇다.

직급은 올랐다. 책임도 늘었다. 일의 양도 늘었다. 달라진 것은 명함뿐이다.


대리가 과장이 되었지만 통장 잔고는 비슷하고, 과장이 차장이 되었지만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


승진은 보상이 아니라 더 많은 소모를 위한 재배치에 가깝다.

그런데 그 구조 안에서 인내하라는 조언은 무엇을 향한 인내인가.

더 많이 소모되기 위해 버티라는 말인가.


인내가 가치 있으려면 인내의 끝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등산이 고통스러워도 정상이 있기 때문에 오른다.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라고 하면 그것은 인내가 아니라 소진이다.


지금 많은 조직이 정상 없는 산을 오르게 하면서,

올라가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올라가다 지쳐 멈추는 사람에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근성이 없어.


세대 갈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문제다. 앞선 세대의 조언이 무력해진 것은 그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조언이 작동하던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이 보상을 보장하던 시대,

한 회사에서 20년을 버티면 임원이 될 수 있던 시대,

집값이 월급으로 따라잡을 수 있던 시대의 지혜는 그 시대와 함께 유효했다.


지금은 그 구조가 없다.


그런데 조언은 구조보다 오래 산다.

말은 시대를 건너 전달되지만, 그 말이 작동하던 맥락은 건너오지 못한다.

그래서 조언은 남고 현실은 달라진 상태로, 두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마주 선다.


한쪽은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답답해하고,

다른 쪽은 왜 내 현실을 보지 못하느냐고 지쳐간다.


더 이상 노인들의 인내에 대한 조언이 쓸모없어졌다는 말은,

그들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 조언을 작동시키던 세계가 사라졌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사라진 세계의 지도를 들고 지금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지금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의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기술이다.

어디서 버티고 어디서 떠날지, 무엇을 쌓고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그것은 앞선 세대가 가르쳐줄 수 없다.

그들이 살아온 방식으로는 지금의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지도는 지금의 땅을 걸어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명함이 바뀌었다고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그 명함을 손에 쥔 사람이다.


그 감각을 믿어라.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면,

그 몸의 언어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버텨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존중하되,

그 이야기가 지금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인내는 미덕이다.

하지만 방향 없는 인내는 소진이다.


그리고 소진된 사람에게 더 버티라고 말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방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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