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이 도피인 이유.
나는 그날 아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일이 버거웠다거나, 사람이 지쳤다거나 하는 말들은 너무 흔해서 오히려 진짜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런 충동을 '훌쩍 떠나는 낭만'이라고 불렀고, 나는 기꺼이 그 이름을 빌려 쓰기로 했다.
공항에서의 설렘은 진짜였다.
수속을 밟으며 느끼는 가벼움, 게이트 앞 커피 한 잔의 온기, 낯선 언어로 가득한 안내 방송. 그 모든 것이 내가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것만으로 이미 무언가를 얻은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설렘의 정체는 기대가 아니었다.
안도였다. 두고 온 것들이 잠시 나를 쫓아오지 못한다는 안도.
낯선 도시의 거리에서 나는 부지런히 '경험'을 수집했다.
줄을 서서 들어간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가이드북에 표시된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는 점점 이국적인 색채로 채워졌고, 나는 그 피드가 곧 나의 성장 기록인 것처럼 느꼈다.
"길 위에서 나를 찾았다"는 문장을 사진 아래 달면서,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찾았다는 느낌이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는 순간, 방금 전의 '발견'은 이미 흐릿해졌다.
여행이 도피가 되는 건 떠나는 순간이 아니다. 돌아오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호화로운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나는 솔직해질 수 있었다.
여기서의 안락함이 좋은 게 아니었다.
거기로 돌아가기 싫은 거였다.
적금을 깨서 마련한 여행 자금, 미루고 온 업무들, 해결하지 않은 채 서랍 속에 밀어 넣은 문제들. 여행지의 화려한 조명은 그것들을 잠시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마취라는 표현이 맞다.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물론 모든 여행이 도피는 아니다.
새로운 풍경이 실제로 사람을 바꾸기도 하고, 낯선 환경이 굳어있던 사고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여행과 내가 했던 여행의 차이는 분명했다.
성장을 위한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한다.
낯선 언어 앞에서 당황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며,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 살았는지를 직면한다.
반면 도피로서의 여행은 불편함을 최소화하려 한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고, 한국어 리뷰가 달린 맛집을 고르고, 예측 가능한 쾌적함 안에 머문다. 자본이 설계한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울타리의 이름은 호의호식(豪衣豪食)이다.
잘 입고 잘 먹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다. 포장지를 한 겹 벗겨내면 남는 것은 결국, 평소엔 엄두 내지 못했던 사치를 '여행'이라는 면죄부 아래 누리는 행위다.
그리고 그 사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박제가 된다. 통장 잔고가 비어 가는 것과 비례해서, 그 경험들은 기억의 구석으로 조용히 밀려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달라져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더 지쳐 있었다. 여행 전에 존재하던 문제들은 그대로였고, 거기에 비어버린 통장과 밀린 할 일들이 더해져 있었다. 그토록 찬양했던 '충전'의 효과는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오히려 일상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행지의 밝은 조명과 비교되는 회색빛 사무실,
이국적인 음식과 비교되는 편의점 도시락. 도망쳤다
돌아온 자리는 언제나 떠나기 전보다 더 좁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계속 떠나는가.
아마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을 버티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를.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를.
그 지침이 도망의 동력이 되고, 도망은 잠시 그 지침을 잊게 해 준다.
나쁜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성장이라 부르지 않는 것,
경험이라 포장하지 않는 것, 그 정직함만큼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가끔 떠난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인가.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을 때,
나는 비행기 표 대신 서랍을 연다.
미뤄둔 것들과 조금 더 오래 마주 앉아 있기 위해.
떠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다만, 돌아올 곳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떠나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조금 더 긴 도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