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마법의 단어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유독 볼품없는 단어들이 있다.
세련되지도 않고, 어딘가 억지스럽고,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 지치는 느낌이 나는 말들.
"어찌됐든간에"와 "꾸역꾸역"이 딱 그렇다.
"어찌됐든간에"는 체념처럼 들린다.
따져봤자 소용없다는 듯,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미 각오했다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깔끔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이 어수룩한 말을 꺼내는 사람은 이미 한 번쯤 쓰러져본 사람이다. 논리가 아니라 몸으로 결정한 사람의 언어다.
"꾸역꾸역"은 더 직접적이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삼키는 모양에서 나온 말이다.
우아하지 않다. 품위도 없다.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좋지도 않은 것을 넘기는 모습이다.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 과정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두 단어가 함께 붙으면 갑자기 무게가 달라진다.
"어찌됐든간에, 꾸역꾸역 해냈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멈추게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성취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준비된 사람이 예상대로 이루어내는 성취,
그리고
준비가 부족하고 상황도 나쁘고 솔직히 자신도 없었는데 어떻게든 해낸 성취.
전자는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후자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다.
충분한 시간도, 충분한 돈도, 충분한 격려도 없이 시작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전략이 아니다.
"어찌됐든간에"라고 중얼거리며 일어서는 습관이다.
그리고 "꾸역꾸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몸이다.
이것을 나약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더 단단한 의지가 있었다면 그런 말이 필요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이 두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멈추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이다.
솔직함과 지속,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돌이켜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대부분 "어찌됐든간에"로 시작됐다.
잘 될지 몰랐지만 어찌됐든간에 지원서를 냈다. 자신이 없었지만 어찌됐든간에 한 번 더 시도했다.
거절당할 것 같았지만 어찌됐든간에 말을 꺼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됐든간에 시작했다.
이 말이 가진 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말의 본질이다.
확신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사람은 결국 많이 움직이지 못한다.
확신이 없어도 일단 발을 내딛는 사람이, 가장 멀리 간다.
"꾸역꾸역"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는 과정의 진실을 담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설레지는 않았다.
하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었고, 이게 맞는 방향인지 의심스러운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았고, 꾸역꾸역 한 줄을 더 썼고, 꾸역꾸역 하루를 마쳤다.
그 꾸역꾸역들이 쌓여서 지금이 됐다.
사람들은 종종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극적인 전환점을 찾으려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각성했다거나, 운명 같은 기회를 만났다거나, 재능이 폭발했다거나.
물론 그런 순간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장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날들의 누적이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서,
어느 날 뒤를 돌아봤을 때 꽤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 평범한 하루를 만드는 것이 "꾸역꾸역"이다.
영감이 있을 때만 글을 쓰는 작가는 많은 글을 쓰지 못한다.
기분이 좋을 때만 운동하는 사람은 몸이 바뀌지 않는다.
완벽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영원히 기다린다.
결국 꾸준함을 만드는 것은 의지의 불꽃이 아니라, 불꽃이 꺼진 날에도 움직이는 관성이다.
그 관성의 다른 이름이 꾸역꾸역이다.
나는 이 두 단어에 인정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인정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려한 순간보다 버텼던 시간이 더 길다.
주목받던 순간보다 아무도 몰라주던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냥 오늘 하루도 어찌됐든간에 해보자는 작은 결심이었고,
잘 안 되더라도 꾸역꾸역 이어가자는 둔한 지속이었다.
이것이 둔하다는 것은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형태의 힘이다. 날카로운 것은 부러지기 쉽다.
세련된 동기는 상황이 나빠지면 힘을 잃는다.
하지만 둔하고 묵직한 것은 웬만해선 꺾이지 않는다.
꾸역꾸역의 힘이 그렇다.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간다.
우리는 지금 어떤 통 속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간에 오늘도 해보는 것.
하기 싫고 지치더라도 꾸역꾸역 한 걸음 더 내딛는 것.
이것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가장 평범하고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성공은 종종 화려한 언어로 묘사된다.
열정, 비전, 도전, 혁신.
하지만 실제 성공에 가장 가까운 언어는 이렇게 생겼다.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간에."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볼품없고 투박하지만,
이 말들이 진짜다.
그리고 이 말들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