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의 이면.

선의라는 이름의 낚싯바늘, 그것에 대하여

by 민태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

커피 한 잔을 먼저 내밀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상대가 말하는 중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진 것의 아주 작은 일부,

시간이든 물질이든 감정이든,


그것을 나눠주는 행위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향해 열린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은 놀랍도록 쉽게 열린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혹은 낯선 모임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고 밥을 사주던 사람.


어색하게 구석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무리 안으로 이끌어주던 그 사람.

그때의 따뜻함은 오래 기억된다.


처음 건네받은 명함보다, 처음 함께한 회식 자리보다,

그 작은 친절이 훨씬 깊이 새겨진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개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교환의 동물이다.


누군가 내게 무언가를 주면,

나는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감각을 느낀다.


굳이 학술적인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몸으로 안다.

밥을 얻어먹으면 다음에는 내가 사야 할 것 같고,

선물을 받으면 비슷한 무게의 무언가를 돌려줘야 마음이 편하다.


받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부채감을 남긴다.

그리고 그 부채감은, 때로 호감이라는 감정으로 위장된다.


우리는 빚진 사람을 좋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 빚을 갚으려는 마음을 호감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불편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세상에는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관계의 초입에서 아낌없이 베푼다.

먼저 밥을 사고, 먼저 칭찬하고, 먼저 도움을 내민다.


늦은 밤 카톡 한 줄로 "요즘 힘들어 보이던데 괜찮아요?"라고 묻고,

생일을 기억해서 작은 선물을 챙기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우연인 척 예약해 둔다.


표면만 보면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낚싯줄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던지는 것은 먹이가 아니라 미끼다.

미끼는 진짜 먹이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외관이 똑같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커피를 사주는 것과,


나중에 청구서를 내밀 계산으로 커피를 사주는 것은,

커피 자체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냄새도 같고 온도도 같고,

컵을 건네는 손의 온기도 다르지 않다.


차이는 오직 상대의 내면에만 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야 만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당한다.


충분히 오래,

충분히 자주,

충분히 달콤하게 받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미끼였음을 알게 된다.


이미 낚인 뒤에.


그 순간의 감각을 아는 사람은 안다. 단순한 배신감이 아니다.

그보다 더 불쾌한 무언가다.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자괴감,

그 친절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감정,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밥 한 끼, 커피 한 잔, 생일 선물 하나가 전부 다시 계산된다.


그 기억들을 소급해서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상처다.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기억까지 훼손당하는 것.


가장 정교한 미끼는 상대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예민한 건가."


미끼를 던진 사람은 상대의 죄책감과 의무감을 낚는 것이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스스로 삼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종종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안함을 느끼면서.


직장에서 이런 일은 특히 자주 일어난다.

입사 초기에 누구보다 친절하게 챙겨주던 선배가,


어느 날부터 자신의 업무를 슬그머니 넘기기 시작한다.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쌓아놓은 호의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혹은 오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이 오는 사람.

연락이 뜸하다가 무언가 부탁이 생기면 갑자기 "요즘 잘 지내?"로 시작하는 메시지.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도 한 번쯤 기대한다.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또 실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친절을 의심해야 하는가.

누군가 커피를 사주면 속으로 청구서를 기다려야 하는가.


그건 너무 피곤한 삶이고, 무엇보다 옳지 않다.


세상에는 여전히 아무런 계산 없이 베푸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누군가를 돕고,

돌아오는 길에 그 일을 이미 잊어버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까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실수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슬픈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별의 기준은 한 가지다. '일관성'이다.


미끼를 던지는 사람의 친절에는 방향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상대에게만,

혹은 얻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에만 친절이 폭발한다.


평소에는 무심하다가 부탁이 있을 때만 살가워지고,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사람에게는 빠르게 관심을 거둔다.


관계의 온도가 상대방의 가치에 따라 오르내린다.

반면 진심으로 베푸는 사람의 친절은 특별한 목적 없이도 지속된다.


자신에게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 순간에도,

그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완벽한 기준은 아니다.

사람은 복잡하고, 관계는 더 복잡하다.


처음에 미끼로 시작했다가 진심이 되기도 하고,

진심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거래로 변질되기도 한다.


선의와 계산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를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먼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나는 지금 미끼를 던지고 있는가,

아니면 진심을 나누고 있는가.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며 친절을 베풀고 있지는 않은가.


내 친절의 온도가 상대의 쓸모에 따라 달라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 곁에는, 결국 미끼가 필요 없는 관계들이 남는다.


호감을 얻는 건 쉽다.


하지만 진짜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 쉬운 방법을 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건네는 커피 한 잔.

청구서 없이 들어주는 이야기 한 편.

그것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 호감이고,


가장 단단한 관계의 첫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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