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는것과 붙잡는 다는것.

추억을 두고 떠나는 일에 대하여

by 민태선

추억은 아름답다.

이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지나간 시간 속에 빛났던 순간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관계들,

그때만 가능했던 감정들.


그것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섬세한 능력 중 하나다.

추억이 없는 삶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추억을 지우라는 말이 아니다.

잊으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나는 지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가, 아니면 붙잡고 있는가.

그 둘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간직한다는 것은 추억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였고, 그것은 그것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


서랍 안에 소중하게 넣어두되, 그 서랍을 하루에도 수십 번 열어 들여다보지 않는 것.

꺼내보고 싶을 때 꺼내볼 수 있지만, 꺼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

추억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추억에게 찾아가는 것.


붙잡는다는 것은 다르다.

추억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의 일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다는 믿음을 놓지 못하는 것.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그것이 다시 온다면 하고 기다리는 것.

현재를 살면서도 눈이 자꾸 뒤를 향하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하는 동안, 지금 앞에 있는 것들이 흐릿해지는 것.

붙잡는 사람의 현재는 언제나 과거보다 부족하다.

비교의 기준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괜찮아도, 그때만큼은 아니라는 결론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지금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

왜 우리는 추억을 붙잡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추억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결말을 알고 있고, 더 이상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반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확실하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고, 또 실망할 수도 있고, 또 틀릴 수도 있다.

그 불확실함이 두려울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미 경험한 것, 이미 느껴본 것, 이미 아는 온도.


추억에 얽매이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두려움의 다른 형태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뒤에 있는 빛을 바라보는 것.

그 빛이 지금은 없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그 빛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대는 것.


그러니 추억에 붙잡힌 사람을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추억을 버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추억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추억을 등 뒤에 두는 것이다.

버리는 것은 없애는 것이지만, 등 뒤에 두는 것은 여전히 함께 가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앞을 가로막지 않는 자리에.


걷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뒤를 돌아보며 걷는 사람은 느리다.

자주 넘어진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한 채, 지나온 길만 바라보며 걷는다.


그렇다고 앞만 보며 걷는 사람이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같은 길을 또 걸을 수 있다.

지나온 길을 알되, 그것을 보며 걷지 않는 것.


이미 몸에 새겨진 것으로 두되, 시선은 앞을 향하는 것.

그것이 간직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추억은 놓기가 특히 어렵다.

사람에 대한 추억이 그렇다.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람, 관계가 끝난 사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 선명해서, 그것을 과거로 두는 것이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잊으면 배신하는 것 같고, 나아가면 혼자 두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가는 것이 그 사람을 잊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내게 남긴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가 알려준 것들, 그와 함께여서 가능했던 감각들,

그 관계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것들은 그 사람이 없어도 내 안에 남는다.

추억을 붙잡아야만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계속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시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추억에 얽매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은,

추억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얽매임이 문제라는 것이다.

추억 자체는 아름답다.

그것을 간직하는 것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발목을 잡기 시작할 때,

현재가 과거의 그늘 안에서만 보이기 시작할 때,

지금 이 순간이 그때에 비해 언제나 부족하게 느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추억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다.


간직한다는 것과 붙잡는다는 것.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같은 추억을 두고도, 어떤 날은 간직하고 어떤 날은 붙잡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오늘, 내가 지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지 붙잡고 있는지를 한 번쯤 물어보는 것.

그 질문이 다음 한 발을 내딛게 한다.

추억은 두고 가는 것이 아니다. 제자리에 두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리에 둔 것은,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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