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계속 시도하고 있나 보다.
힘들 때마다 빛나고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빛난다는 것은 환하고 강한 상태를 떠올리게 하는데,
힘들다는 것은 그 반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힘들다는 것은, 아직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놓아버린 사람은 힘들지도 않다.
힘들다는 감각 자체가, 아직 여기 있다는 신호다.
그러니 힘든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빛나고 있다.
흔들리면서, 버티면서, 때로는 꺼질 것 같으면서도.
포기해도 된다는 말을 쉽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이 얼마나 오용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포기를 미화하는 것, 포기를 지혜처럼 포장하는 것, 그것은 다른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포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들고 있기 힘든 것을 내려놓는 것.
억지로 빛나려고 애쓰는 것을 잠시 멈추는 것.
환하게 타오르는 척을 그만두는 것.
그것을 포기라고 부른다면, 그 포기는 허락되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더 정직한 상태다.
꺼진 척하지 않고, 지금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사람들은 빛을 유지하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다.
괜찮은 척, 환한 척, 흔들리지 않는 척.
그 척들이 쌓이면 정작 다시 빛날 힘이 남지 않는다.
포기는 때로 회복의 다른 이름이다.
깜빡이는 빛을 생각해 본다.
일정하게 타오르는 불꽃보다, 깜빡이는 빛이 더 눈에 띈다.
어둠 속에서 멀리 있는 등대를 찾을 때, 우리는 깜빡이는 것을 찾는다.
고정된 빛은 배경에 묻히지만, 깜빡이는 빛은 존재를 알린다.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그 리듬이, 오히려 더 강하게 시선을 붙잡는다.
힘들어서 꺼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도 만나기 싫고, 그냥 이 자리에 가만히 있고 싶은 날들.
그 순간을 실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깜빡임이라고 부르고 싶다.
잠시 꺼지는 것. 그리고 다시 켜지는 것.
그 사이의 어둠이 있어야, 다시 켜졌을 때 빛이 보인다.
꺼진 적 없는 빛은 그 빛의 존재를 알아채기 어렵다.
언제나 거기 있으니까.
하지만 한 번이라도 꺼졌다 다시 켜진 빛은,
켜졌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꺼짐이 있어야 켜짐이 보인다.
다시 빛나면 된다는 말은, 지금 꺼져도 괜찮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이 문장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포기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반대다.
다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지금 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반대로 다시 빛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절대로 꺼지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산다.
그 강박이 사람을 더 빨리 소진시킨다.
꺼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다.
조금씩 깜빡이며 숨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이, 더 오래 빛난다.
그러니 포기해도 된다는 말은 나약함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회복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다시 켜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꺼지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힘든 순간에 빛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환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꺼질 것 같으면서도 아직 꺼지지 않은 것이다.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 것이다.
그것이 빛이다.
완벽하게 타오르는 것만이 빛이 아니다.
깜빡이면서도 꺼지지 않으려는 것, 꺼졌다가도 다시 켜지는 것, 그 모든 것이 빛의 형태다.
그리고 어쩌면 그 깜빡임이, 일정하게 타오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빛은 살아있다고. 이 빛은 버티고 있다고.
누군가 지금 꺼져가고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포기해도 된다.
잠시 꺼져도 된다. 다시 빛나면 되니까.
그리고 깜빡일수록 더 잘 보이기도 하니까.
당신이 힘들다는 것을, 흔들린다는 것을, 지금 꺼질 것 같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챈다.
일정하게 타오르는 빛 사이에서,
깜빡이는 빛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듯이.
그러니 완벽하게 빛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깜빡여도 된다.
그 깜빡임이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아직 여기 있다는 신호이고,
다시 켜질 것이라는 약속이다.
힘들 때마다 우리는 빛나고 있다.
그 빛의 형태가 눈부시지 않더라도.
필라멘트가 버티는 한.
영원히 깜빡거릴 것이다.
밝은 빛이 세상을 비출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