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다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틈새로 빛이 비치더라.

by 민태선

버텨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들으며 자란다.


힘들어도 버텨라.

무너질 것 같아도 버텨라.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버팀은 미덕처럼 가르쳐졌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강함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버틴다. 이를 악물고, 감정을 누르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면서.

그런데 한 번쯤 물어보고 싶다.

버티는 동안, 안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버팀은 외부를 향한 행위다.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서 있는 것.


그런데 그 안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버티기 위해 단단하게 굳히는 것들이 생긴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감각을 닫는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딱딱하게 만든다.


그 딱딱함이 처음에는 보호막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있어야 살아낼 수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딱딱함이 나를 가두기 시작한다.

상처를 막으려고 쳤던 벽이, 기쁨도 막는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굳힌 것이,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도 막는다.

버팀이 오래될수록, 그 안은 점점 좁아진다.


깨진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실패처럼 느낀다.


무너졌다는 것, 버티지 못했다는 것, 결국 한계가 왔다는 것.

그 감각이 수치심처럼 따라온다.


깨진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 더 깊이 숨는다.

혼자 감당하려고 한다. 깨진 채로 또 버틴다.


하지만 깨짐의 다른 면을 본다.

깨지지 않은 것에는 틈이 없다.

틈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빛도,

바람도,

새로운 것도.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은 안전해 보이지만,

그 안의 공기는 점점 탁해진다.


깨진다는 것은 그 밀폐가 열리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원하지 않은 순간에. 하지만 열린다.


깨져야 빛이 들어온다.

이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깨지는 순간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아프다.

그냥 무너진다.


그냥 끝난 것 같다.

빛이 들어온다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후는, 깨진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다.


버티지 말라는 말이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버팀과 나아감은 다르다.


버팀은 제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것이고, 나아감은 무너지더라도 다음으로 가는 것이다.

버티는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깨진 사람은 어딘가로 움직인다.

방향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나무를 생각해 본다.


폭풍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나무는 부러진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살아남는다.


흔들림이 나무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흔들릴 수 있는 것이 나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깨지지 않으려고 딱딱하게 굳은 것이, 오히려 더 쉽게 부러진다.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 더 오래 서 있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누르고 버티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다.

흔들리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강한 것이다.



그 차이는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버티는 사람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겉으로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간 뒤에 달라진다.


깨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깨지고 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버티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무엇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

어떤 것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는지.

깨지는 순간에 그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프게. 어지럽게.

하지만 그것들이 나와야,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있다.


가득 찬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비워져야 담긴다.


깨짐은 강제로 비워지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방식의 비움. 하지만 비움이다.


그러니 버티지 않아도 된다.

흔들려도 된다.

깨져도 된다.

깨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진 자리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그 빛이 버티는 동안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온전한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가 아닐 수 있다.

어딘가 깨진 사람이, 어딘가 금이 간 사람이, 그 틈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담는다.

깨진 곳이 없는 사람은 빛이 들어올 자리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버티지 마세요. 깨져도 괜찮습니다.

그 깨진 자리가, 당신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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