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답들은 꽤나 알고 있었다.
나는 정답을 모른다.
이것을 고백이라고 불러야 할지, 선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오답은 꽤나 모았다.
틀린 선택들. 잘못 든 길들. 믿었다가 배신당한 판단들.
확신했다가 무너진 결론들.
그것들이 쌓여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랍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어떤 것은 흉터처럼, 어떤 것은 습관처럼, 어떤 것은 이유도 모른 채 특정 상황에서 올라오는 감각처럼.
사람들은 오답을 부끄러워한다.
감추고 싶어 한다.
가능하면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그것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오답은 내가 실제로 문제를 풀었다는 증거다.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만이 틀릴 수 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은 오답조차 없다.
오답을 모은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처음에는 그냥 실패다.
아프고, 창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변한다.
이 방향은 아니구나,라는 앎.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앎.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라는 앎.
오답은 정보다.
정답보다 훨씬 구체적인 정보다.
정답은 하나의 길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오답은 수많은 길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틀린 길들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맞는 길 앞에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또 틀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이 왜 맞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을 한 번에 찾은 사람은 그것이 정답인지 알기 어렵다.
비교할 오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개의 오답을 지나온 사람은, 무언가 달라 보이는 길 앞에서 멈추는 법을 안다.
이것은 전에 느껴본 것과 다르다는 감각.
그 감각은 오답들이 쌓아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오답을 많이 모았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을 보장하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답을 백 개 모아도 정답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오답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그냥 백 번의 실패일 뿐이다.
오답이 가치를 갖는 것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디서 어떻게 틀렸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음 풀이에 반영하는 사람.
그때만 오답은 자산이 된다.
그렇다면 또 질문이 생긴다.
나는 오답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많이 틀렸다는 사실만 쌓아두고 있는가.
상처를 경험이라고 부르고, 실패를 훈장이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같은 오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답을 모았다는 것과, 오답에서 배웠다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답을 모은 사람을 신뢰한다.
정답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오답을 솔직하게 꺼내 보이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답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틀렸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만큼, 자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단단한 형태의 자신감이다.
확신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흔들린다.
확신이 깨지는 순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답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다르다.
이미 여러 번 틀려봤기 때문에, 또 틀리는 것이 덜 두렵다.
또 틀리면 또 하나의 오답이 쌓이는 것이고,
그것도 결국 무언가를 알려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자신감은 정답을 알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틀리는 것에 익숙해져서 생기는 것이다.
정답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확신을 요구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그 질문들 앞에서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나약하게 보일 수 있다.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정답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멀리 간다.
정답을 안다고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멈추지만,
정답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오답은 꽤나 모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어떤 길이 나와 맞지 않는지.
어떤 선택이 나를 작게 만드는지.
어떤 순간에 내가 무너지는지.
그것들을 안다는 것이,
정답을 모른다는 사실보다 훨씬 단단한 무언가를 내 안에 만들어놓았다.
정답은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오답 앞에서는,
이제 꽤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또 하나 알았다고.
이 길은 아니라고.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