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되 잊지말자.

잊되 기억하고, 추억하되 그리워 하지마라.

by 민태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용서하라고.


그래야 네가 자유로워진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 슬그머니 따라붙는 말이 있다.

잊어버려라. 다 지나간 일이야.

그냥 흘려보내. 나는 이 부분에서 멈추게 된다.

용서와 망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 일이 분명히 있었고, 그것이 나를 분명히 아프게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감정의 무게를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기억을 지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위다.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억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기 때문이다.


한번 데인 곳에서 다시 데이지 않으려면, 그 열기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다치게 했는지를 알고 있어야, 같은 패턴 앞에서 내가 멈출 수 있다.


용서는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 것이고, 기억은 그 문 앞에 서서 누가 오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 둘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자꾸 혼동한다.

용서했으니 이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억하고 있으면 용서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리에 다시 손을 내밀고, 또 다시 같은 방식으로 아파진다.

용서는 했지만 기억을 지운 탓에, 자신이 왜 또 이 자리에 서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두 번째 역설은 더 섬세하다.

과거는 잊되, 기억하라.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 '잊는다'는 것은 집착을 버린다는 뜻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내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과거의 어떤 사건에 매달려 오늘을 갉아먹는 것,

그것이 진짜 잊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그 사건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조용히 알고 있는 것,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이해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깊이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 실패를 매일 꺼내 들여다보며 자책하는 것은 잊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가 내게 어떤 한계를 알려줬고,

어떤 방향을 수정하게 했는지를 담담하게 알고 있는 것,

그것은 건강한 기억이다.


전자는 과거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과거를 소화한 것이다.

우리가 진짜 잊어야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달라붙어 있는 감정의 독소다.


분노, 억울함, 수치심, 자책. 그것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잊는다'의 진짜 의미다.

그리고 그 사건이 남긴 교훈과 흔적은, 나라는 사람의 지층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억한다'의 진짜 의미다.

마지막은 가장 아프다.

추억하되, 그리워하지 마라.

추억과 그리움은 다르다. 추억은 지나간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행위다.

그리움은 그것이 지금 여기에 없다는 사실을 아파하는 감정이다.


추억은 과거를 완성된 것으로 두는 것이고,

그리움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당기려는 시도다.


그리고 그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과거는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날, 전부였던 어떤 관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순간.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믿으며 현재를 흐릿하게 보는 것은,

스스로를 과거의 포로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움은 현재를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고,

지금을 언제나 부족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나이 든 어른들이 자꾸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때가 진짜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를 그리워하는 습관이 현재를 보는 눈을 흐리기 때문이다.

추억은 미화된다.


아팠던 것은 잊히고,

빛났던 것만 남는다.


그래서 그리움 속의 과거는 언제나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그 앞에 선 현재는 언제나 초라해 보인다.

이것이 그리움의 함정이다.

추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가 존재했음을 감사하고,

그리고 오늘로 돌아오는 것.


그리움은 과거를 붙잡으려는 손짓이지만,

추억은 과거를 제자리에 두는 일이다.

용서하되 잊지 말고, 잊되 기억하고,

추억하되 그리워하지 마라.

이 세 문장은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순 안에 삶의 실제 질감이 있다.


삶은 원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용서와 기억이 공존하고,

망각과 이해가 함께 있고,

추억과 현재가 나란히 놓인다.


그 복잡함을 견디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고,

그 역설을 품고 사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다만 조금 더 덜 아프게 살아가는 방향은 있다.

그것을 찾는 과정이 이 글이고, 내 모든 글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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